신문이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
얼마 전 어떤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박정희, 전두환도 감히 계엄을 못했는데 그는 계엄을 선포해 스스로 무너졌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부마사태가 났을 때 감히 계엄할 생각을 못했단다.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당시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였다. 부산, 마산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니 부산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부마사태가 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계엄할 생각을 못했다 하나.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요즘 젊은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당시에 팔팔했던 이가 그렇게 말하니 잘 이해가 안 된다.
오늘 엇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오늘 한 조간신문의 기자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12.12사태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도해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주영복 전 국방장관'이라 했다. '12.12사태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도해'가 눈길을 끈다. 이것이 사실일까.
12.12 사태와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무슨 상관인가. 12.12 사태에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럼 팩트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다.
1979년 10월 18일 부산일원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부마사태 때문이었다. 부마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부산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불과 8일 뒤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다. 믿었던 부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1979년 10월 27일에 비상계엄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북에서 남침해올 것을 우려한 예방 조치였다.
그런 상황에서 12월 12일 저녁 12.12사태가 발생했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체포, 연행되었고 9사단을 비롯한 몇 부대가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에 진입해 군권을 장악했다. 이른바 12.12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은 전과 같은 상황이었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이미 비상계엄은 내려져 있었다.
그럼 제주도까지 비상계엄이 확대된 것은 언제였나. 무려 5개월이 지난 1980년 5월 17일에였다. 5월 들어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5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제주도를 포함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가 의결되었다. 당시 국방장관이 주영복 씨였다. 주무장관으로서 주영복 씨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장했고 실행했다. 그것이 후일 그가 7년형을 선고받은 이유다.
도대체 주영복 씨와 12.12는 무슨 상관이 있나. 없다. 주영복 씨는 1979년 4월에 공군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났고 12월 12일에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물론 희미한 관련은 있다. 민간인 주영복 씨가 불과 이틀 뒤인 12월 14일 갑자기 국방장관에 발탁된 것이다. 12.12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과 평소에 친밀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신군부는 민간인 주영복 씨를 국방장관에 앉혔겠는가.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므로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신군부 세력이 앉혔다고 말하는 게 어폐가 있을까.
아마 주영복 씨는 12.12 사태가 일어날 것을 사전에 알았거나 몰랐다 하더라도 이를 지지했을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가 12.12 사태 직후에 국방장관에 임명되었겠는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12.12 사태는 주영복 씨를 매개로 해서 그 정도의 관계밖에 없다. 요컨대 12.12 사태 때 비상계엄은 전국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이듬해 5월 17일에 비상계엄이 제주도를 포함하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기사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씌어야 한다. 과장이나 건너뜀이 있어서는 안 되고 견강부회도 안 된다. 요즘 가뜩이나 유튜브 등에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그런데 전통적인 정통 매체에서조차 사실과 어긋나는 기사가 있으니 현기증이 나려 한다.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