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맘대로 만들어내도 되나

'언어 경제성' 원칙 앞에서 문법이 멕 없이 무너진다

by 김세중

한 신문에 저명한 칼럼니스트의 글이 실렸다. 제목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정치'이고 글의 요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제 놓아주고 법정 공방에서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밟고 넘어가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과거 검사 시절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많은 국민의 주목과 지지를 받았는데 이제 그 말을 지지자들에게 돌려주어 지지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니라 당에 충성하고 민주주의 회복에 충실하고 보수의 가치에 매진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몇 군데 이상한 국어 표현이 있어 어리둥절해진다. 우선 다음 문장을 보자.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절체절명한 것은 야당이 세(勢)를 회복하는 것이다.


'절체절명한 것은'이라고 했다. 의아하다. '절체절명하다'라는 말이 국어에 있나. 국어사전을 찾아보지만 '절체절명하다'는 없다. '절체절명'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칼럼니스트는 '절체절명한'이라고 했을까. 이유가 잘 짚이지 않는다. 국어사전에는 '절체절명하다'가 없지만 그의 머릿속 사전에는 '절체절명하다'가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혹시 '절체절명하다'는 국어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말인데 국어사전에 없는 것이 못마땅해서 사전을 무시하고 '절체절명한'이라고 했을까. 아니면 국어사전에 없는 게 좀 께름칙하긴 하지만 '절체절명한'이라고 말해도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리라 보고 이 말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문법도 바뀔 수 있고 단어도 새로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신문 칼럼에서 '절체절명한'이라는 말을 보게 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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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편리하고 쉬운 한국어를 꿈꿉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 '민법의 비문'(2022), '품격 있는 글쓰기'(2017)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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