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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Dec 19. 2016

추억의 LA


우연한 기회에 LA를 추억해보게 되었다. 브런치 덕이다. 구독자 가운데 LA에 사는 분이 계셔서다. (LA, 엘에이, 로스앤젤레스, 나성 다 같은 말인데 여기서 LA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


나는 이제껏 LA를 세 번 갔다. 다 꽤 오래 전 일이다. 2002년 2월이 처음이었다. 동료 한 사람과 함께 LA에 갔다. LA공항에서 내려 코리아타운을 향해 지리하게 차를 타고 간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막에서나 볼법한 석유 시추 시설 같은 것이 있어 놀랐었다. 거길 지나 한참 더 간 끝에 말로만 듣던 코리아타운에 닿았다. LA에 도착한 첫날 우리 두 사람은 코리아타운의 <뉴서울호텔>에 묵었다. 


<뉴서울호텔>은 올림픽과 버몬트가 교차하는 곳 부근이었다. 나지막한 2층이었던 것 같다. 그 호텔을 거점으로 삼아 며칠간 LA에 머무르며 코리아타운을 들여다보았다. 살펴보려고 애썼다. LA에 가보기 전엔 몰랐다. LA가 얼마나 큰지를... 나중에 듣기론 LA라고 하면 경상북도만하다고 했다. 과연 그 정도 될 거 같다. 내가 가본 LA는 코끼리의 어느 작은 한 부위쯤 될 것이다. 


어느 날 하루는 코리아타운을 걸어서 둘러보리라 하고 맘먹고 걷기 시작했다. 아마 <뉴서울호텔>에서 시작해 올림픽을 서쪽으로 걸어 사우스웨스턴에서 오른쪽으로 꼬부라져 윌셔가까지 간 다음 다시 오른쪽으로 꼬부라져 윌셔를 걸어 버몬트를 만났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또 꼬부라져 올림픽이 있는 <뉴서울호텔>로 돌아왔을 것이다. 밤이라 조금은 긴장하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걸어보니 걸을만했다. 한 시간 가량 걸렸는지 모르겠다. 더 걸렸을 것도 같다.


LA를 세 번 갔지만 세번째는 주로 시애틀 부근에서 활동했고 LA는 그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들렀을 뿐이니 LA는 사실 두 번 간 셈이고 그것은 각각 2002년 2월과 2002년 11월이었다.  그러니 나의 LA에 대한 기억은 2002년에 머물러 있고 14년이나 지난 지금 LA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대체로 변하지 않았겠지만 변한 부분 또한 얼마나 많을까.


내 기억은 2002년 2월의 것과 그 해 11월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2002년 2월 당시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문화원을 찾아갔지만 원장은 솔트레이크시티로 출장을 가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원장 아닌 다른 분을 만났다. 한국문화원은 코리아타운에서 윌셔가를 따라 한참 서쪽으로 가야 있었다. 거기 가는 도중에 LA한국일보도 있었는데 거기도 들른 기억이 난다.


LA에서 놀란 게 몇 가지 있다. 바둑판처럼 길이 나 있는 도시이니 사거리가 얼마나 많으랴. 그런데 어느 사거리든 좌회전 신호가 없었다. 이른바 '비보호 좌회전'뿐이었다. 서울처럼 큰 도로와 작은 도로가 뚜렷이 구분돼 있지 않고 하고많은 길이 다 비슷비슷해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과 적게 다니는 길이 따로 없었다. 자동차가 흔해 빠져도 길은 더 많아 차들이 골고루 분산돼 다니니 사거리에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어도 직진 신호시에 맞은편에서 차가 안 올 때 좌회전할 수 있었다. 참 편리했다.


어느 날이었다. 앵 하고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가는 차들이 일제히 납작 엎드렸다. 단 한 대도 움직이는 차가 없었다. 모든 차가 숨죽이고 가만 있는 사이를 구급차는 신나게 달려갔다. 구급차가 멀리 사라진 뒤에야 납작 엎드렸던 차들이 일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겐 가히 장관이었다. 그걸 어겼다간 엄청난 벌금 폭탄을 맞게 된다는 걸 안 건 한참 후였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보았다. 지하 깊숙이 승강장에 내려가 지하철 오기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사람 중에 백인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흑인이거나 히스패닉이거나 나 같은 동양인... 신기한 광경이었다.


신기한 일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윌셔의 어느 쇼핑센터에 간 적이 있다. 건물의 5층 정도까지는 온통 주차공간이었고 그곳을 통과해서야 비로소 상점가가 시작되었다. 그런 구조의 건물을 처음 보니 신기할 수밖에... 차 없인 어디 다니질 못하는 미국다운 풍경이었다.


어느 날은 시내 구경을 나갔다. 이른바 다운타운에 들어가 보았다. 아마 코리아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갔지 싶다. LA 다운타운은 놀라운 모습이었다. 10층 내외의 건물들이 즐비한데 건물마다 외벽에 계단이 붙어 있었다.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는 계단인 듯싶었다. 그런 건물들은 한결같이 낡디낡아 보였다. 한마디로 LA 다운타운은 19세기의 풍경인가 싶을 만큼 고풍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건 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LA 다운타운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끝없이 확장되어 지금 '경상북도' 넓이만큼 커졌을 것이다. 


예전에 대학원에 다닐 때에 동료 한 사람이 그랬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유학을 떠나 샌디에고에서 석사를 받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던 이였다. 그런 그가 미국에 대해 들려준 얘기들이 인상깊었었다. 미국엔 참 대단한 부자들이 많아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자기 집에서 내려 다시 승용차로 갈아타고 집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그로부터 들은 기억이 아직도 난다. LA 베벌리힐스 부자동네엔 밖에선 집을 볼 수 없는 땅 넓은 집들이 많다는 얘기도 그에게서 들었었다. LA에서 부자동네를 가본 적은 없지만 코리아타운의 주택가는 한눈에 봐도 가난한 집들이 많았다. 돈 좀 벌면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얘기가 이해가 갔다.


LA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건 버스였다. 길 자체가 구불구불해서 일직선인 버스노선이 있을 수 없는 서울과 달리 LA의 어떤 버스노선은 줄기차게 직진만 하는 거 같았다. 그 기나긴 윌셔가를 줄기차게 달리는 버스 말이다. 좌회전, 우회전을 끝없이 계속해야 하는 서울의 버스와 달리 그 길다란 버스가 줄기차게 직진만 하니 빨간불일 땐 서고 파란불일 땐 가기만 하면 됐다. 그 LA 버스에서 신기한 게 또 있었다. 내릴 사람은 전기로 작동되는 버튼을 눌러 운전사에게 내리겠다는 걸 알리지 않고 창가에 걸린 줄을 잡아당기면 소리가 나니 줄을 당겨서 알렸다. 오랜 전통이 지금껏 그대로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버스를 탈 때 쉽게 자전거를 버스에 실을 수 있는 것도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버스 안에 들고 들어오지 않고 버스 바깥 전면 고리에 자전거를 걸쳐 놓고 몸만 버스에 오르면 됐다. 참으로 편리했다.


코리아타운에 온통 한글 간판이고 한국 상점이 즐비했지만 역시 미국은 미국이었다. 음식점에 가서 순두부를 한 그릇 시켜도 그릇이 여간 크지 않고 양이 여간 많지 않았다. 덩치 큰 미국인들도 사먹을테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뭐든 컸다. 주인은 한국인, 주방 종업원은 히스패닉, 손님은 한국인은 물론 백인을 비롯한 온갖 인종... 그런 집이 참 많아 보였다. 그러니 음식점 주인이 한국어는 물론 영어, 스페인어를 다 웬만큼은 잘하는 게 보통인 듯싶었다.


LA에 머물던 중 어느 날은 윌셔가의 한 피시방에 들어갔다. 피시방답게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2세, 3세인 듯싶은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데 온통 영어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영어를 더 잘하는 건 사실 이상할 게 없는데도 내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한국어를 못하는 한국인들도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한국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언어인가, 피부색인가, 음식인가.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졌는데 2002년 LA에 갔을 때 당시 안식년으로 LA에 계셨던 S대학의 K교수님이 손수 운전해서 몇 군데를 데려다 주셨다. 그분이 남쪽 롱비치까지 데리고 가신 기억이 난다. 서쪽 산타모니카 바닷가도 간 기억이 있다. LA에 흠뻑 빠져 라크마(미술관)에도 자주 가셨다는 그분은 귀국 후 몇 년 안 돼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LA에 머물 때 이미 몹쓸 병이 발견되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LA 하면 몇 군데 더 간 곳이 있다. 할리우드 넘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구경 간 일, 뭔 일로 패서디나까지 간 것 등이 기억난다. 장거리로는 북쪽으로 여러 시간을 달려 베이커스필드 지나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간 게 제일 멀리 갔다. 


이제 조금 있으면 LA에 처음 간 지 15년이 된다. 그 사이에 내 머리가 하이얗게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맘과 열정은 별로 변치 않았다 자부하고 있다. 직장도 명퇴했겠다 시간도 자유로워 다음 미국 방문 땐 긴 자전거여행도 꿈꾸고 있는데 출발지를 LA로 할까 궁리중이다. 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로 향할 것이냐, 그랜드캐년을 거쳐 동부로 향할 것이냐... 이런 꿈은 수 년 내에 실행에 옮겨야지 마냥 미뤄선 안 될 거다. 그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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