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단정에서 추정으로 논리가 춤춰서야

by 김세중

최적의 단어 선택 해야


그렇다면 날로 발전하는 북의 핵·미사일 위협에 군사적 방비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인지, 해야 한다면 사드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한 적이 없다.

0216 ㅈ일보


'날로 발전하는 북의 핵·미사일 위협'이라고 했다. 위협이 더 커지는 것을 '발전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발전하다'는 국어사전에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다'라고 뜻풀이된 데서 보듯이 보통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 말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로 발전하는' 대신 '날로 커지는'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날로 발전하는'이 꾸미는 말이 '위협'이 아니라 '북의 핵·미사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날로 고도화하는'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날로 커지는 북의 핵·미사일 위협에 군사적 방비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인지, 해야 한다면 사드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한 적이 없다.



이왕이면 명료한 표현을


큰 목표를 위해 소아(小我)를 뛰어넘은 지혜와 결단은 사상의 크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신간회의 주역들은 생각의 그릇이 큰 분들이었다.

0216 ㅈ일보


'큰 목표를 위해 소아(小我)를 뛰어넘은 지혜와 결단은 사상의 크기가 있어야 가능하다.'에서 '사상의 크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매우 함축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명료하지 않은 표현이기도 하다. 어떤 사상이든지 사상의 크기가 크거나 작거나 할 뿐 사상의 크기가 아예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명료한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사상의 크기가 커야 가능하다'라고 하거나 '큰 사상이 있어야 가능하다'라고 해야 명료한 표현이다.


큰 목표를 위해 소아(小我)를 뛰어넘은 지혜와 결단은 사상의 크기가 커야 가능하다. 신간회의 주역들은 생각의 그릇이 큰 분들이었다.



'혈안이 되다' 바로 쓰기


북한 핵이 민족 생존을 위협하고 주변 강대국 다툼은 날로 격렬해지는데 우리 정파(政派)는 사분오열해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다.

0216 ㅈ일보


'혈안이 되다'는 관용구로서 '어떠한에 광분하다'라는 뜻의 말이다.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다'에서 '이익' 그 자체는 '일'이 아니다. 이익을 지키고 이익을 탐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일'이다. 따라서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다'가 아니라 '자기 이익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자기 이익 탐하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자기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돼 있다' 등과 같이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북한 핵이 민족 생존을 위협하고 주변 강대국 다툼은 날로 격렬해지는데 우리 정파(政派)는 사분오열해 자기 이익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알기 쉬운 표현을 써야


박근혜 대통령이 차명폰으로 최순실과 지난해 6개월간 573차례 통화했고, 최씨가 독일 도피 중일 때는 127차례 통화했다고 특검이 어제 법원에서 밝혔다. 최씨는 지난해 9월 3일 독일로 출국했다가 10월 30일 입국했다. 최씨가 도피 기간에도 하루에 2~3번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것이다. 최씨가 지난해 9월 출국한 시점은 국정 농단 비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할 때다. 검찰은 10월 5일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 중인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최씨는 한 달 가까이 차명폰으로 뭔가를 얘기했다는 것이다. 수사 상황을 보고받는 대통령이 사건 피의자와 전화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사용한 차명폰은 동일한 날 청와대 행정관이 개통한 것이라고 특검은 주장했다.

0216 ㅈ일보


이 글은 '대통령이 도피한 최순실과 차명폰으로 127번 통화'라는 제목의 신문 사설 시작 부분이다. 문제는 '동일한 날'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동일한 날'이 어떤 날인지 금세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의 앞에서 어떤 날이 언급되었고 그 날과 동일한 날인지 싶어 앞을 찾아보지만 언급된 날이 없다. 결국 '동일한 날'이라는 말은 박 대통령이 사용한 차명폰과 최씨가 사용한 차명폰이 같은 날에 청와대 행정관이 개통한 것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동일한 날'보다는 '같은 날' 또는 '한날'이라고 하는 것이 뜻을 파악하기가 더 쉽다. 알기 쉬운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사용한 차명폰은 같은 날 청와대 행정관이 개통한 것이라고 특검은 주장했다.



단정에서 추정으로 논리가 춤춰서야


북한 정권의 호전성은 익히 아는 바이나 이번 김정남 암살처럼 외국에서 그것도 인파가 붐비는 공항에서 야밤도 아닌 백주에 테러를 가하는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에 우리는 크게 놀라고 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진상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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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독살에 관한 신문 사설이다. 두 문장 중에서 앞 문장은 김정남이 죽은 것이 암살이며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하였다.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일 뿐 단언할 만큼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 문장에서 북한 정권이 저지른 짓임을 확신하는 말을 하고서 바로 이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가 아니라 '북한의 소행이 틀림없어 보인다'라고 했더라면 별 무리가 없다.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를 쓰려면 앞에서 '북한 정권의 호전성은 익히 아는 바',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에 크게 놀라고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야 했다.


사건의 진상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이 틀림없어 보인다.



접속할 땐 호응하는지 살펴야


왜 이 시점에 김정남을 제거했는가와 관련해선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김정남의 한국 망명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김정은의 눈에 들기 위한 북한 정찰총국의 과잉 충성 탓이라는 분석 등이 난무한다.

0216 ㅈ일보


'김정남의 한국 망명 가능성을 차단하거나'는 이 말과 호응할 말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김정남의 한국 망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거나'라고 하면 '~라는 분석'과 호응이 된다. '김정남의 한국 망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말이 되기 때문이다. 두 요소를 접속할 때는 앞뒤 요소 모두가 공통으로 걸리는 말과 잘 호응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김정남의 한국 망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거나, 김정은의 눈에 들기 위한 북한 정찰총국의 과잉 충성 탓이라는 분석 등이 난무한다.



뜻이 분명히 드러나게 표현해야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임명직이 아닌 데다 사업 조직이라 공무원의 전리품이 돼서는 안 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개방형으로 문을 열어 놓은 이유다.

0216 ㅈ일보


위 두 문장은 뜻이 명확하지 않다. 첫 문장에서 공공기관이 임명직이 아니라는 것부터가 분명한 서술이 아니다. 기관이 임명직일 수는 없고 기관의 자리가 임명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를 '공공기관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임원은'이라고 해야 한다. '공무원의 전리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도 '전쟁'이 언급되지 않은 가운데 '전리품'이란 말이 쓰여서 적절하지 않다.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차지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개방형으로'이라는 말도 생략이 지나쳤다. '경영능력이 검증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라고 할 때 비로소 뜻이 선명해진다.


공공기관 임원은 기본적으로 임명직이 아니어서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차지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문을 열어 놓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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