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단정할 때와 추정할 때

by 김세중

단정할 때와 추정할 때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대로 북은 애초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의 대화는 기만 전술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지금도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고 믿는다.

(중략)

정 전 장관과 같은 사람들은 우리 내부의 상대방에 대해선 무서울 정도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면서,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북한 폭력 집단에 대해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앞으로 이들이 더 고개를 들고 나설 것이다.

0222 ㅈ일보


단정은 확신한 채 말하는 것이다. 추정은 미루어 짐작해 말하는 것이다. 단정을 하려면 확신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위에서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대로 북은 애초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는 단정이다. 북한의 생각을 단정한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을 근거로 들기는 했으나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 의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단정하겠다면 단정하는 근거를 대야 한다. 근거가 없이 말한다면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대로 북은 애초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또는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대로 북은 애초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가 적절하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지금도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고 믿는다.'도 단정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 역시 제3자가 알기 어려운 법이어서 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를 대야 하지만 위 글에서는 그런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지금도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정도로 누그러뜨려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런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는 '높아진다고 한다'라고 해서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남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남의 말을 인용할 필요가 없을 때는 인용을 삼가야 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증언대로 북은 애초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대화는 기만 전술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지금도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중략)

정 전 장관과 같은 사람들은 우리 내부의 상대방에 대해선 무서울 정도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면서,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북한 폭력 집단에 대해선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더 고개를 들고 나설 것이다.



논설문의 끝은 어떻게 맺어야 하나


경제가 커지면서 민간부채가 적절히 늘어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 가계부채는 그렇지 못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 범위 안이라고 비교적 후하게 평해 오다가 지난해부터 입장을 바꿨다. 비은행 대출 과다, 부채가구의 연령구조, 독특한 전세제도와 주택대출제도 등 구조적 요인을 들어 관리에 힘쓰라고 조언한다.

0222 ㅈ일보


위 글은 '한국경제 뇌관, 가계부채 관리에 총력 기울일 때'라는 제목의 사설 맨 마지막 문단이다. 사설은 논설문의 대표적 사례인데 논설문은 어떤 사안에 대해 글쓴이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따라서 논설문의 마지막 문단은 글의 핵심적인 주장을 결론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글에서 주장하는 바를 뚜렷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이 무엇을 주장하는 글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위 글은 마지막 문단이지만 무엇을 주장하는지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논설문의 마지막 문단답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늘어나는 가계부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문장이 마지막에 나와야만 글 전체의 주장하는 바가 뚜렷이 드러나면서 글이 끝났음도 알 수 있다. 글의 시작은 시작다워야 하고 끝은 끝다워야 한다.


경제가 커지면서 민간부채가 적절히 늘어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 가계부채는 그렇지 못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 범위 안이라고 비교적 후하게 평해 오다가 지난해부터 입장을 바꿨다. 비은행 대출 과다, 부채가구의 연령구조, 독특한 전세제도와 주택대출제도 등 구조적 요인을 들어 관리에 힘쓰라고 조언한다. 늘어나는 가계부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맥에 맞는 단어를 써야


민정수석만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판에 영장 기각은 납득하기 어렵다.

0222 ㄷ일보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판에'에서 '번지지'는 주어인 '국정 농단 사건이'에 호응하는 서술어로서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번지다'라는 말은 '~에 번지다' 또는 '~으로 번지다'처럼 쓰이면서 '퍼지다', '확대되다'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위 예에서는 '번지지' 앞에 '~에'도 없고 '~으로'도 없다. 위 맥락에서는 '번지지'보다는 '커지지'나 '불거지지' 같은 말이 어울린다. 문맥에 맞는 단어를 골라 쓸 필요가 있다.


민정수석만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판에 영장 기각은 납득하기 어렵다.



자연스러운 연결을 해야


‘법꾸라지’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0222 ㄷ일보


'‘법꾸라지’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에서 '특검이 우 전 수석에 대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을 '만시지탄'이라고 한 것은 지나쳤다. '특검이 우 전 수석에 대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은 만시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만시지탄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연결이 된다.


‘법꾸라지’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을 금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글다듬기]  제대로 된 연결을 해야 뜻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