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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0. 2017

어머니를 여의고

불효자는 웁니다


어머닌 1919년에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셨다.

3.1운동 직후였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밤 돌아가셨다.


집에서 세는 나이로 아흔아홉이었으니 장수하신 편이라 할 수 있다.

위로 세 살 위인 언니도 90 넘게 사셨고 아래로 여동생도 역시 90을 넘기셨다.

가운데인 어머니가 자매 중에서 제일 오래 사셨다.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곤 자식들 집을 옮겨 다니시다 결국 양로원으로 가셨다.

경기도 화성의 양로원에서 2년 조금 넘게 계셨는데 화장실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신 후로

거동이 더욱 불편해져서 지난 2년 가까이는 일산에 있는 요양원에 계셨다.


요양원 중에서 규모가 작은 데를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라 한다.

일종의 요양원인데 마치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지난 2년 동안 거의 빠짐 없이 토요일이면 요양원으로 어머닐 찾아뵈었다.

점심 무렵에 가서 어머닐 모시고 근처 음식점에 가 외식을 했다.


거동이 불편해 나가길 꺼려도 하셨지만 당신을 위해 딸과 아들이 찾아왔기에

힘든 걸음이지만 두 시간 가까운 외출을 늘 하셨다.


어머닌 평생 지팡이 없이 사셨다.

허리도 굽지 않으셨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걸음이 여간 느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부축 받기도 마다시고 혼자 살살 걸음을 옮기셨다.


한 달쯤 전인 지난 6월 9일(금) 새벽 내 전화벨이 울렸다.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시고 아들을 불러달라 하셨단다.

어머니를 바꿔주었는데 아파 죽겠다며 어서 올 수 없냐 하셨다.


야밤에 달려가도 소용이 없기에 날이 밝은 후 갔더니 좀 잠잠해져 계셨다.

어머닐 모시고 일산의 병원으로 가 몇 가지 검사 후 입원을 하시게 됐다.


병원에선 이미 여러 곳에 이상이 생긴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갖가지 약을 투여했다.

봇물처럼 곳곳에서 질병은 터져 나왔고 약으로 막아내느라 힘겨웠다.

심장, 폐, 신장, 장에 문제가 있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입원 25일이 되는 날 퇴원을 결정했다.

염증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는 등 호전 기미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요 오판이었다.

겉으로 나타난 몇 가지 호전 증세를 완전한 회복으로 믿고 

앞으로의 재활은 요양원에 돌아가서 해야지 병원에 계속 입원한 채로는 설령 회복된다 하더라도

너무나 오랜 병상 생활 때문에 홀로 서고, 걸음을 옮기는 게 불가능해질 걸 걱정했다.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는데....


7월 3일(월) 퇴원하고 이튿날인 7월 4일(화) 요양원으로 가 뵈었다.

눈언저리는 이미 푸릇푸릇해져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찾아온 막내아들을 어찌나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시는지 놀랄 정도였다.

아들은 여간 어리둥절하지 않았다.


7월 5일(수) 하루는 그냥 하루가 아니었다.

오전엔 곧 돌아가실 것 같은 위중한 상태를 보이셨고

오후엔 깊이 잠에 빠지셨으며 저녁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돌아오셨다.

극과 극을 오간 기나긴 하루였다.


이 날 저녁의 모습을 진정한 회복이라 여긴 게 큰 착각이었다.

7월 6일(목) 오후에 딸과 아들이 찾아가니 몹시 괴로운 듯 옆으로 누워 계셨다.

하지만 정신이 살아 있으셔서 여러 가지 의사 표현을 하셨다.


별로 위중하다 생각하지 않고 내일 오겠다고 말씀드리니

평소 하지 않던 말씀을 하셨다.

"가지 마래...." "사람이 없어...."


간다고 하면 늘 어서 가라 하셨지 언제 가지 말라고 하셨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가지 말라셨다.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일 다시 오겠다며

어머니를 놔두고 요양원을 나왔다.

오후 4시쯤이었다.


밤 11시....

전화가 요양원 원장님한테서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 같다고....


옆자리의 할머니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다가가 보니 숨이 멈춘 걸 느꼈다 했다.

그래서 요양원 직원에게 알렸고....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몇 군데 연락을 한 뒤 요양원을 향했다.


도착하니 이미 숨이 멎은 지 2시간쯤이 지난 뒤였다.

98년 3개월간의 일생이 끝나 있었다.


고향 아버지 묘 옆에 묻고 돌아왔다.

이제 두 분이 나란히 계신다.


지난 2년 주말이면 늘 찾아갔는데 이젠 갈 데가 없다.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할지 한동안 혼돈스러울 거 같다.


이제 내 차례다.

30년 뒤가 될지, 20년 뒤나 40년 뒤가 될지 그 누가 알랴.


한동안 어머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 같다.

쏟아지는 비가 내 눈물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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