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주어를 밝히기 어려우면 서술어를 피동으로

by 김세중

불필요한 인용 삼가야


정부가 이 중대 사안을 놓고 극히 일부 시민에게 결정권을 위임한다는 것은 책임 회피다.

0725 ㅈ일보


'위임한다는'은 '위임한다고 하는'이 줄어든 말로서 인용을 뜻하는 '-고 하-' 때문에 그 뒤에는 보통 '말'과 관련된 표현이 따른다. '말', '소문' 등 외에 '발상', '계획' 같은 것도 올 수 있다. 문제는 위 문맥에서 굳이 '위임한다는'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임하는'이라고 하면 된다. 더 간명하고 뜻이 명확하다.


정부가 이 중대 사안을 놓고 극히 일부 시민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



주어를 밝히기 어려우면 서술어를 피동으로


한국은 꾸준히 원전을 건설해오면서 설비 표준화에 성공했고 풍부한 전문 인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에너지 구성은 이런 속사정까지 뚫어보는 전문 지식과 여러 고려 사항들 사이의 최적 균형을 찾아내는 고도의 안목이 필요한 사안이다.

0725 ㅈ일보


위 예문에서 서술어는 '평가한다'인데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평가한다는 것인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사설을 쓴 주체가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같은 주어를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회 일반 또는 관련 전문가 집단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라면 주어를 밝혀서 넣어 주든지, 아니면 '평가 받는다' 또는 '평가된다'처럼 피동형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한국은 꾸준히 원전을 건설해오면서 설비 표준화에 성공했고 풍부한 전문 인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역대' 남용 바람직하지 않아


역대로 시민 참여 공론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

0725 ㅈ일보


'역대'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또는 그동안'이란 뜻이다. 위 예문에서 굳이 '역대'가 쓰일 이유가 없다. '역대로' 대신 '과거에'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튀어나와 널리 퍼지면서 '역대'가 남용되고 있다. 언어에 유행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역대'를 즐겨 쓰는 유행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시민 참여 공론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



호응이 돼야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0725 ㅈ일보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했는데 '새 검찰총장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걸다'가 말이 안 되므로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은 바르지 않다.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기대'라고 해야 '기대를 걸다'가 관형화된 구성으로서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거는'을 '기대하는'으로 바꾼 다음 '큰'을 '중요한'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그럴 경우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새 검찰총장에게 기대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의미상 서로 맞는 말끼리 짝지어야


정부는 또 수백 명 규모로 예상되는 시민 배심원단의 최종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발표했는데 배심원단 존재의 법적 구속력도 모호하다. 법률 해석상 배심원단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공론화위원회가 총리 훈령에 따라 설치된 것뿐이다.

0725 ㅈ일보


'배심원단 존재의 법적 구속력'이라고 했는데 '존재'와 '구속력'은 의미상 서로 잘 맞지 않는다. '구속력'을 살리려면 '존재'가 아니라 '결정'이나 '행위' 같은 말이 와야겠고 '존재'를 살리려면 '구속력' 대신 '근거'나 '지위' 같은 표현을 써야 맞다. 그런데 다음 문장을 보면 '존재'를 살리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정부는 또 수백 명 규모로 예상되는 시민 배심원단의 최종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발표했는데 배심원단 존재의 법적 근거도 모호하다.



표현은 정확해야


무엇보다 청와대가 대통령 만찬에 명단을 넣고 빼는 방식으로 기업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고압적일뿐더러 기업을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가 아니다.

0725 ㄷ일보


'명단'은 '어떤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표'로서 '명단'에는 여러 이름이 들어 있다. 위 예에서 '대통령 만찬에 명단을 넣고 빼는'이라고 했는데 '대통령 만찬 명단에 이름을 넣고 빼는'이라고 해야 완전하다. 이것을 줄여서 '대통령 만찬 명단에 넣고 빼는'처럼 '이름을'을 생략할 수도 있고 아예 '대통령 만찬에 넣고 빼는'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만찬에 명단을 넣고 빼는'은 가장 나쁜 경우다. 표현은 정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대통령 만찬( 명단)에 넣고 빼는 방식으로 기업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고압적일뿐더러 기업을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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