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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4. 2017

태안반도 탐방기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주말에 1박 2일 자전거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여주 지나서 강천섬에서 캠핑하고 올까, 섬진강자전거길을 1박으로 다녀올까도 싶었지만 결론은 엉뚱하게 태안반도였다. 2년 전 전국 일주를 할 때 대천에서 안면도 가는 배를 놓치는 바람에 태안쪽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때 못 간 태안 북부 지방을 돌아보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7시 45분 광명종합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벌초 가는 사람들이 많아선가, 서해안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느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해대교를 지나서야 비로소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3시간만에야 종점인 태안터미널에 도착했다. 11시가 가까웠다. 터미널 김밥집에서 라면 한 그릇 사먹고서 출발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뭐가 그리 급했는지 자전거와 야영장비가 든 배낭만 메고 나왔지 정작 중요한 헬멧, 장갑, 고글은 빠트리고 나왔다. 이를 어째... 하지만 태안은 조용한 전원일 터이고 차들이 많지 않을 거라 보고 헬멧 없이 타기로 했다.


태안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교통광장을 지나 북으로 달리니 태안마애삼존불이 오른쪽으로 가면 있다는 표지가 나왔다. 한참 언덕을 올라야할테니 그냥 통과... 얼마 안 가 무내교차로가 나타났을 때 직진해서 원북면을 향해 내달았다. 태안읍에서 원북면까지는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왕복2차로에 갓길이 좁아서다. 버스나 트럭이 지나갈 때면 아찔아찔하다. 평소에 자전거도로를 주로 다니다가 이렇게 차들과 같이 다니니 많이 위축된다. 더구나 길은 오르막내리막이 많고 휘는 데도 많다.


원북면에 이르렀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가 있는 모양이라 함성과 음악 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네의 커다란 행사일 것이다. 원북면은 제법 번화했는데 면소재지를 벗어나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젠 맘이 편해졌다. 이따금 차가 지나갈 뿐이니 길이 편도 1차로라도 그리 겁나지 않는다. 편안하게 달린다.


이원면에 닿았다. 원북면에 비하면 여간 조용하지 않다. 고요하기까지 하다. 농협하나로마트가 있어 들어갔다. 앞으론 이렇게 큰 상점이 없을테니 필요한 물건은 여기서 사둬야겠다 싶었다. 컵라면과 물, 부식 몇 가지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배낭에 이제 빈 공간은 거의 없다.


이원면 소재지를 지나 북으로 달리는데 이제까지처럼 역시 완만한 오르막내리막이 계속 반복됐다. 심한 오르막이 아니니 견딜만하다. 올라가면 다시 신나는 내리막이고... 도중에 펜션이 군데군데 있었다. 어느 펜션은 자그만 수영장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 데리고 온 이들이 아주 좋아할만하다. 또 어떤 펜션은 한옥으로 지었는데 멀리서 보니 마치 일본 건축물 같기도 했다. 한옥은 일본식보다 역시 곡선이 더 우아한 거 같다.


차츰 북단이 가까워졌다. '땅끝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땅끝마을은 전라남도 해남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충남 태안에도 있었다. 이원반도의 끝인 만대항 부근도 땅끝마을이었다. 도중에 염전도 보았다. 전남에서 보았던 염전을 말이다.

드디어 만대항에 닿았다. 항구엔 언제나 낚시꾼들로 북적인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따라서 온 아이들도 낚시에 열중하고 있었다. 소년 낚시꾼, 소녀 낚시꾼이다. 대성하겠다. 만대항의 어느 커피숍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며 휴식했다. 태안읍을 출발한 지 2시간이 더 지났다. 이제 더 갈 데가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 바다 건너에 엄청난 공업단지가 보였는데 평택 포승공단인가 했더니 그렇게 먼 곳은 아니고 서산의 대산산업단지 같았다. 규모가 굉장했다.


만대항을 출발해 다음 행선지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학암포다. 이원면 쪽으로 가다가 꾸지나무골해변도 지나고 사목해변도 지나서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니 오른쪽으로 빠지는 삼거리가 나타났는데 거기서 우회전했다. 이원방조제와 학암포로 가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머지 않아 이원방조제가 나타났다. 방조제는 온통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래 전에 그린 모양이라 색이 변색돼 별로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에버그린태안희망벽화라는데 10년 전 기름유출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희망을 불어넣고자 만든 사업이라는 설명이 씌어 있었다.

방조제를 지나니 엄청난 산업시설이 우뚝 서 있었는데 태안화력발전소였다. 그곳은 온통 발전소 지대였다. 한국발전교육원이 있는가 하면 그곳을 지나니 태양광발전소도 있어 밭에 작물이 자라지 않고 태양광 집열판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발전소 지구를 지나니 학암포가 조금씩 가까워져 왔다.

안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학암포를 향하는데 중간에 구례포해수욕장 입구가 있고 그걸 지나니 번화한 상점가가 나타나면서 학암포해수욕장이었다. 그곳은 국립공원이기도 했다. 학암포 선착장에도 많은 낚시꾼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고 막 도착한 배들이 잡은 수산물을 내려놓고 있었다. 꽃게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학암포해변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일몰은 언제 봐도 장엄하다.

이제 슬슬 잘 곳을 물색할 시점이 됐다. 오늘 밤은 어디서 야영할 것인가. 학암포는 너무 이르고 가까운 구례포도 마찬가지다. 신두리해수욕장으로 맘을 정하고 그리 향했다. 학암포에서 신두리까지 '태안해변길'이 나 있긴 하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는 산길이라고 학암포의 자그만 경찰지서에서 경찰관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의 조언에 따라 도로를 달려서 신두리로 접근했다. 신두교를 건너고 좀 더 가니 길 오른쪽으로 빠지라는 표지가 나타나길래 그리로 빠졌다.


곧 거대한 리조트 단지가 보였다. 자연미라곤 없이 온통 외부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둥, 야영과 불놀이는 해서는 안 된다는 둥 안 되는 게 그리 많다. 도저히 이 근처에선 야영할 수가 없다 싶었다. 빨리 벗어나야 했다. 자유를 찾아 나왔는데 온통 '금지' 투성이인 데를 배회할 필요가 있나. 신두리 해안 사구도 날도 어두워지고 해서 보는 둥 마는 둥하고 나왔다 어서 신두리 리조트지구를 벗어나야 했다.

다행히 리조트단지를 벗어나서 얼마 안 가 갑자기 조용한 지대에 이르렀다. 인적을 찾을 수 없는 호젓한 곳이 나타났다. 맞다. 이런 데다. 이런 데가 내가 찾던 곳이다. 앞에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거대한 수면이 펼쳐져 있고 제법 넓은 터가 물가에 있어서 야영하기 딱 좋다 싶었다. 자전거를 나무 밑에 던져 두고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펴기 시작했다. 지난주엔 텐트를 못 쳐서 허둥댔는데 이번엔 전혀 다르다. 맥을 알고 요령을 아니 이보다 더 쉬울 수 없다. 폴대를 연결시켜서 엇갈리게 끼워넣으니 바로 집이 한 채 섰다. 플라이를 씌우고 나니 끝이다.

해는 졌지만 시간은 아직 겨우 저녁 7시가 좀 지난 정도다. 잠이 올 턱은 없고 해서 텐트를 놓아둔 채 자전거를 타고 신두리의 리조트단지쪽으로 갔다. 곳곳에 가게, 음식점, 노래방, 카페 등이 있었다. 커피와 맥주를 파는 곳에 들어가 크림맥주를 한잔 주문했다. 주인아저씨가 내 또래인 듯해 말을 붙이니 술술 대화가 이어졌다. 원래 고향은 안양이고 화성에서 오래 살았으며 최근엔 김천에서 귀농생활을 2년 하다가 이곳 신두리에 와서 커피점을 한다며 다시 그곳으로 귀농할 거라 했다. 김천은 온통 산악지대로 귀농했던 곳도 해발 600 지점이었단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에게 다른 아는 이가 찾아와 자리를 떴다.


텐트에 들어갔다. 처음엔 침낭을 꺼내지 않았다. 날씨가 침낭 없어도 잘만하다 싶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니 그게 아니었다. 침낭을 꺼내야만 했다. 침낭 속으로 몸을 집어 넣었다. 바람이 꽤나 불었다. 2인용이니 혼자 자기엔 널널하다. 베개가 없는데 배낭 위에 옷가지를 접어서 얹으니 베개로 훌륭했다.


아침엔 꽤 일찍 눈을 떴다. 캄캄한 4시 반이었다. 슬슬 챙기기 시작했다. 가스버너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끓여 먹었으며 매트도 바람을 빼서 집에다 집어넣고 침낭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도 한데 모았다. 마지막으로 텐트도 조립해서 주머니속에 넣었다. 깔끔히 배낭 속에 정리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수면은 호수가 아니고 바다였다. 만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바다가 깊숙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새벽부터 고깃배들은 부지런히 엔진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7시께 야영한 자리를 떴다. 이제 또 하루가 시작된다. 태배전망대를 가보고 만리포를 거쳐서 태안으로 돌아오는 일이 남아 있다. 태배전망대를 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방근제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태안해변길이라는데 동네를 얼마 안 가서 산비탈이 나왔다. 자전거를 들고 산길을 올라야 했다. 그런 '등산'은 겨우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로 수도 없이 가파른 산을 자전거를 들고 올라야 했다.


산길에는 자전거는 물론이고 걷는 사람도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없었다. 오로지 곳곳의 산길에 게가 부지런히 오갈 뿐이었다. 그런데 게가 참 신기도 하다. 거무튀튀한 작은 게도 많았지만 산에 유난히 제법 크면서 짙은 주황색 빛을 띤 게가 많았다. 산에서 게를 본 건 태안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수없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곳 특산 음식인 '게국지'의 '게'도 이 게를 말할까.


의항항에 이르렀다. 어떤 지도엔 개목항이라 표시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됩니다'라 써붙여진 곳에 들어가니 난색을 표했다. 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처 다른 데 가보라고 권했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시간 많으니 괜찮다 했고 그럼 해주겠다 했다.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잠시 밖에 나가서 해양경찰파출소에 들어갔다. 지도가 있냐 물어봤더니 벽에 붙은 것밖엔 없다고 했는데 벽에 붙은 지도는 태안군 전체 지도였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태배재 일대의 지도인데....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된장찌개를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다시 나섰다. 태배재로 이르는 도중에 신너루해수욕장을 지났다. 거긴 제법 큰 데였고 거길 지나니 이태백캠핑장이라는 데가 나타났다. 캠핑장을 지나니 고요하기 그지없는 작은 해변이 하나 있었다. 그리곤 가파른 산길이 시작됐고 데크를 부지런히 오르니 그곳이 바로 태배전망대요, 동시에 바로 유류피해역사전시관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태배전망대는 그 옛날 당나리 시인 이태백이 이곳에 와 경치에 감탄해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인지 궁금하다. 그 시절에 뭘 타고 이태백이 중국에서 태안까지 왔을까. 배를 타고?

태배전망대에서 꽤 머물렀다. 비록 날씨가 흐려 전망은 별로였으나 잘 꾸며져 있어 쉬기엔 좋았고 아래층 전시관에 가니 2007년 12월에 있었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의 유물과 사진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130만 명이나 자원봉사를 했다니 국민의 단결력을 잘 보여준 일이었다. 기름 유출은 만리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있었다.


태배전망대를 나왔다. 오르막내리막이 계속 이어졌다.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곳이 많아 끌고 오르고 내렸다.  구름포해수욕장 입구에서는 해수욕장 가는 길이 가파른 내리막이라 그냥 지나쳤다. 의항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제법 컸다. 그곳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도중에 백리포해수욕장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었는데 그걸 지나치니 긴 내리막길이 시작돼 쏜살같이 내려갔다. 다 내려오고 보니 서너 시간 전 지났던 곳이 아닌가! 방근제 부근이었다. 태배전망대를 보기 위해 3시간 이상 헤맸던 것이다. 물론 고생한 보람으로 태배전망대에 가보긴 했지만.


그런데 내리막을 내려오는 바람에 백리포는 물론이지만 천리포, 만리포해수욕장 가는 길도 멀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천리포, 만리포를 안 가보고 가선 될쏘냐 싶어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백리포, 천리포 가는 길 표시가 있어서 그리로 들어갔다. 포장된 도로였다. 1킬로쯤 갔을까 오른쪽은 백리포, 왼쪽은 천리포, 만리포라 돼 있어 왼쪽을 택했다. 백리포는 포기하기로 한 거다.


내리막 좁은 길을 얼마간 달리니 천리포가 나타났다. 거긴 지형이 참 묘하다. 방파제가 있고 그 안에 해수욕장이 있다. 방파제엔 역시 낚시꾼들이 많았다. 풍경이 좀 어수선했다. 그곳을 나와 얼마 안 가 천리포수목원이 있어 들어가지 않고 그냥 통과하고 바로 이어서 만리포해수욕장이 장관을 드러냈다. 굉장히 규모가 큰 해수욕장이다. 지금은 물론 휴가철이 지나서 조용했지만...

만리포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하루 세 번 있는 서울 가는 차가 10분 전에 출발해버렸다. 그걸 탈 수 있었다면 당연히 탔을 것이다. 태안까지 자전거 타고 갈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10분 차이로 차는 먼저 가버렸다. 할 수 없이 자전거로 18킬로 가량 떨어진 태안을 향해 밟았다. 길이 여간 넓지 않다. 갓길로 달리면 안전한 편이다.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태안읍이 가까워졌다. 1시간 가량 자전거를 달려 오후 1시 45분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2시 30분 차 표를 끊었다. 남은 시간엔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사먹고 휴대폰 충전도 했다. 화장실 가서는 세면도 열심히 했다. 워낙 꾀죄죄했으니까.


2시 반 버스의 기사는 가히 '운신'이라 부를만했다. 그 거대한 버스를 고속도로가 막힌다 해서 이름 없는 좁은 길로도 달리는데 신들린 듯 몰았다. 과연 그런 보람이 있어 버스는 2시간 반만에 강남센트럴터미널에 도착했다. 준수했다. 정해진 길로 달려서 왔다면 아마 한 시간 이상 더 걸렸으리라.


태안읍과 만리포, 천리포는 전에도 가본 적이 있어 낯이 익다. 하지만 만대항, 이원방조제, 학암포, 신두리, 태배전망대(유류피해전시관) 등은 난생 처음 가보았다. 태안해변길도 물론 처음 걸었다. 자전거를 들고서였다. 산을 뒤덮다시피한(약간 과장이다) 게는 참으로 놀라웠다. 신두리 해안에 야영한 곳도 다음에 또 다시 와서 텐트 치고 야영하고 싶다. 그곳의 단점은 물이 없으니 물을 미리 준비와야 한다는 것 정도뿐이다. 사람이 없어서 좋다. 탁 트인 바다 수면이 마치 거대한 호수같다. 오토캠핑으로 차에 온갖 장비 다 싣고 다니는 것도 맛이겠지만 배낭에 1-2인용 텐트 넣고 자전거로 다니는 맛이 쏠쏠하다. 그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나의 태안 사랑은 깊어만 간다. 어디 신두리만이랴. 안면도쪽에도 고요한 곳이 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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