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 ㅈ일보
사설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사설의 요지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데 노인이 푸대접받고 있으니 노인을 차별하지 말고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제목은 주장을 잘 요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뜻이 모호할 뿐 사설의 요지가 뭔지 잘 보여주지 못한다. 차라리 '노인을 위하는 나라가 돼야'가 평이해 보일지 몰라도 알기 쉽고 뜻이 선명하다. 과거에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있었다. 일본은 분명 있지만 없다고 한 것은 독자의 시선을 끌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논설문 제목이 책 제목을 흉내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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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에는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 5세대가 동시대에 살게 된다'라고 했는데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가 어떻게 5세대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래 증조부모나 손자라는 말은 '누구의 증조부모', '누구의 손자'처럼 쓰이게 돼 있다. '누구의'가 없는 증조부모나 손자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생략된 '누구의'에 '나의'를 넣어 보면 '나의 증조부모에서 나의 손자까지'가 되는데 이는 5대가 아니라 6대이다. 증조부모-조부모-부모-나-자녀-손자가 되니 말이다. 따라서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 5세대'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를 5세대라고 한 것도 잘못이지만 100세 시대가 된다고 해서 5세대가 동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도 수긍하기가 어렵다. 요즘도 2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사람이 물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결혼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게 추세다. 30대에 결혼하는 일은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곧 100세 시대가 된다고 해서 4세대, 5세대가 공존하는 일이 늘어나지 않음을 뜻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오히려 평균 수명이 짧았던 옛날에 5세대 공존의 예를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런 마당에 '100세 시대에는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 5세대가 동시대에 살게 된다'라고 단언한 것은 사실과 잘 맞지 않아 동의하기 어렵다.
'3세대 공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80, 90세 노인이 아직 낯설다.'는 모호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3세대 공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5세대 공존이 아직 낯설다.'라고 하면 나아진다. 이미 평균 수명이 82세인데 80세, 90세 노인이 낯설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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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사는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뜻을 나타낼 때에만 써야 한다. 위 문장에서는 보조사 '도'를 거듭 썼다. 적어도 두번째 '도'는 써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보조사 대신에 평이하게 목적격 조사인 '을'을 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