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ㅈ일보
'美 '조건 없는 對北 대화' 제의, 결정적 순간 다가왔다'라는 제목의 사설 마지막 단락이다. 사설은 논설문이다. 논설문은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이 사설이 펼치는 주장은 무엇인가? 주장이 있다면 그 주장에 동조할 수 있을까?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이 사설이 내세우는 주장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맨 마지막 문장이 '그런데 한국의 운명이 걸린 이 결정적 순간에 한국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이니 한국이 이 중요한 순간에 제 목소리를 내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사설의 주장일까? 뚜렷하지가 않다.
사설의 주장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외에 이 사설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제목이 '美 '조건 없는 對北 대화' 제의, 결정적 순간 다가왔다'인데 '결정적 순간'은 지나친 표현이라는 점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북핵 제거를 위해 북한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북한과 타협하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특정 시점에 공격하는 것이니 결정적 순간인 게 맞지만 북한과 타협하는 때가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타협을 할 때에 역사적인 문서 조인이라도 하면 모르거니와 대개는 그렇지 않으므로 '타협'과 '결정적 순간'은 잘 안 맞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표현은 지나쳐 보인다.
다른 문제는 논리 자체에 관한 것이다. 위 글에서는 북핵 동결, 제재 해제가 악몽이라고 했다. 북이 핵을 갖게 되는 것도 전쟁 못지않은 참사라고 했다. 북핵은 해체되고 완전히 없어져야지 동결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인위적으로 핵을 제거하는 방법뿐이다. 이른바 군사 옵션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글에서는 '전쟁도 없어야 하지만'이라고 했다. 전쟁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모순에 빠졌다. 어떤 글이든 자기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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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은 문장에 조사 '에'가 연속으로 사용되었다.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영장 기각에는'을 '영장 기각은'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검찰의 부실한 수사에'를 '검찰의 부실한 수사가'로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에'가 연속으로 사용되는 것을 피한다. 그렇게 되면 '검찰의 부실한 수사가 일차적 책임이 있다'가 되어 주격조사 '이/가'가 되풀이되기는 하지만 '에'와 달리 '이/가'의 연속 사용은 흔히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