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민의 베트남 여행기
남들은 보통 반나절을 투자한다는 호이안에 이틀 머물기로 했다. 오래된 도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쉬고 싶기도 해서 번잡한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호텔을 잡았다. 처음 들어갔을 때 호텔에서 차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한참을 헤맸을 것 같은 후미진 곳이었다. 택시기사들도 정문이 어딘지 모르고 GPS가 안내하는 대로 골목 어귀에 서서 의아해하곤 했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대충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바로 출발했으므로 내게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서 처음 지내는 여행지였다. 무더위에 정신 못 차리던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 새벽, 호이안의 진짜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는 듯이 조용히 흐르는 투본강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부터 닭이 울었다. 호텔방 창문은 방음이 잘 돼있어서 그 소리가 잠을 깰 정도는 아니었어도 여기가 얼마나 시골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앞은 강변이고, 뒤는 너른 벌판에 소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소는 호텔부지만큼이나 넓은 풀밭에 홀로 낮에는 그늘에, 아침저녁으로는 가운데에 나와 풀을 뜯었다. 밤새 물이 들어찬 강의 건너편에선 마치 공산당 방송 같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베트남의 사람들은 이런 새벽 소음에 익숙한 건지, 아니면 더운 나라라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발코니에 앉아 달달한 커피믹스를 타마시다가 아이들이 아직 잠든 틈에 이 동네를 탐험하러 나갔다. 어린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선 할아버지, 고기잡이를 나가기 전 어망을 손질하는 아저씨, 동네 사람들은 애매하게 자리 잡은 호텔의 투숙색을 보는데 익숙한 듯했다.
"굿모닝"
한 남자가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아녕하쎄요"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가볍게 답을 하자 "코피?"라고 묻는다. 나는 그제야 거기에 어설픈 카페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등 하나와 국기가 걸려있는 가건물이었다. 아직 여섯 시도 되기 전이었지만 마을은 깨어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보다 많은 개가 나를 맞았다.
시골개들은 순했다. 간혹 짖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활짝 열려있는 문 앞에 서서 집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목줄을 매어놓지 않아도 멀리 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누렁이 한 놈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옆을 지나갔다. 마치 내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자기도 조용히 넘어가겠다는 듯이. 그러다... 해맑은 얼굴로 점박이 하나가 다가왔다. 살짝 냄새를 맡아보더니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은근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가며. 내 평생 이렇게 순수하고 달콤한 구애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백마를 탄 왕자도 아닌 비루먹은 시골개에게 내 마음이 설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면, 녀석은 평생 나를 사랑할 것이다. 변함없이.
주인 없는 개라고 모두 피부병이 있거나 더러운 건 아니다. 때론 어쩌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호이안 구시가 골목에서 마주친 이 갈색 점박이는 외국인 여행자가 쓰다듬어주자 애타게 따라가다 멈춰 서서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더운 나라의 개들에 대한 기억은 오래전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의 인상이 전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덥고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 개의 모습은 털이 짧고 꼬리가 길며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느라 누가 보는지 지나가는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개들에게도 각기 다른 사정이라는 게 있다. 도시개인지, 시골개인지,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있어본 적도 없는지에 따라 참 많이 다르다. 깔끔하게 미용을 한 다낭의 푸들은 도도하게 앉아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늘 비슷한 종류의 개들이 주인에게 똥봉투를 들려 산책하는 모습만 보다가 시골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자유로운 영혼들을 보니 어릴 적 동네 멍멍이들이 생각이 났다. 마당에서 키우던 집 지키는 개들.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하던 시절, 시골에선 복날을 위해 키우던 강아지들마저 있었다. 그래도 휴가 간다고 애지중지 키우던 개를 고속도로에 버리고 가지는 않았다. 과연 개들의 삶은, 도시개나 시골개나, 세월이 흘러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