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난 굉장히 수동적인 동시에 감정적인 아이였다. 외로움을 많이 탔고, 무언가를 하더라도 항상 습관적으로 의지할 누군가를 찾았다. 매번 그럴듯한 성과물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는 나를 그런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랬던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진학해 타지 생활을 하며 당신을 만나고부터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나의 바로 뒷자리였던 당신은 나완 다른 사람이었다. 이성적이었으며 무던했으며 능동적인 사람이었다. 힘든 상황이 있어도 내색 없이 묵묵하게 상황을 잘 판단해서 자기만의 길을 걷는 당신이 내게는 퍽 멋있어 보였다. 자리가 맞닿아있기에 우린 금방 친해졌고, 나는 하나 둘 그 친구와 함께하며 그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려고 노력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음과 동시에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을 붙어 다니니 어느 순간부터 난 그와 비슷한 결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감정적이고 수동적인 아이는 어느덧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항상 침착하게 또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도, 외로움을 타는 일도 나완 거리가 먼 일이 되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인생은 어차피 독고다이라는 신념이 생긴 건. 당신에게 배운 모든 것들은 고등학교 밖의 세상에서 날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무엇이 주어져도 마치 당신이 해냈던 것처럼 묵묵히 잘 해내는 사람으로 재단되었다. 그럴수록 난 내 신념에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는 편을 선호하게 되었다. 굳이 팀을 이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혼자가 훨씬 효율적이고 편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점점 동떨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같이 일하시던 분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당시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었고, 연륜이 있으신 분이었기에 많이 따르고 좋아하던 분이었다. 너무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기보다는 남에게 의지해도 된다고, 남을 좀 더 믿고 설령 남들이 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기다려주라고 말이다. 당시 난 오만하게도 스스로가 개중에 가장 일을 잘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렵고 중요한 일은 다 내가 전담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힘들긴 했으나 남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보다 그냥 내가 처리하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나였기에 당시의 조언은 약간의 의문을 자아냈다.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지?라는 마음으로 그 연유를 물었다. 이에 그분은 명확한 답보다는 나중에 여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는, 당시엔 이해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
그 이후로도 난 여전히 뭐든 혼자 해결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그런 일상이 지속되니 차츰 난 자주 지쳤고, 자주 번아웃이 왔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혼자 이겨내려 고군분투를 했다. 그런 내 일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건 내가 학부연구생으로써 연구실에 들어간 후부터이다. 학부연구생이 되며 일상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게 되었고, 연구실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해야 하는 것들이었기에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오랜 기간 같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고, 연구실에서의 일상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동시에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우린 자주 서로 배운 것과 아는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이젠 비로소 예전 그분이 했던 애매모호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혼자가 아닌 우리의 일상 속 난 그전보다 훨씬 무언가를 길게 지속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나 혼자만의 일상보다 더 재미있었고, 중간에 내가 지치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 남들과 함께함으로써 난 기존의 내가 걷던 길이 아닌, 때론 다른 길을 걷기도 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많이 배울 수도 있었다. 아마도 예전 그분이 애매모호하게 이야기했던, 나중에 알게 될것이라는 그 이유가 이런 것들이 아닌가라고 나는 추측한다.
물론 위의 경험은 상황과 환경과 사람이 우연의 일치로 잘 맞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애지당초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도 앞선 상황보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 훨씬 많기에 그런 마인드를 가진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내가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혼자는 시너지가 좋은 다수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확률적으로 혼자가 더 나은가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더 나은가 무엇이 내게 더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고, 때론 이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고다이'는 '우리'를 이길 수 없기에 최대한 다른 사람과 잘 융화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