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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그리고 운명

계획대로 살 수 없는 인생의 묘미

by 모스




'우연''필연' 그리고 '운명'. 이들은 너무나도 다른 단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닮은 단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떤 일에 대해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혹은 운명인지 고민하곤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우연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반복되며 얽혀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간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필연이라는 굵직한 선 위에 수많은 우연들이 점처럼 찍혀 있는 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수학, 과학엔 영 흥미가 없던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문과를 지망하여 공무원을 꿈꾸던 학생이었지만, 어쩌다보니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등 떠밀려 이과를 택했다. 이과생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그 길에 흥미가 없던 그는 또 한 번 남이 미는 방향에 따라 공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는 필연적으로 공학이라는 학문에 회의를 느꼈다. 만약 여기서 그 학생이 우연히 수학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수학, 과학에 늦바람이 나지 않았더라면, 동시에 우연히 복학 후 처음 사귄 친구가 전자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현재의 전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도, 전과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다. 중학생 때까지 본인은 천생 문과라고 믿던 아이는 이공계열 학생이 되었고, 공무원을 꿈꿨던 소년은 이제 회로쟁이가 되었다. 내 인생의 구할 구푼은 당연하듯 흘러가는 일상이었는데 돌아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한 푼의 우연이 현재 내 상황의 구할 구푼을 만들어 놨다.


어린 시절에는 이렇듯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속상해했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오히려 예측할 수 없었기에 내 삶이 더 다채로워졌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인생이 온전히 필연으로만 쓰인 각본이라면, 내 삶은 그저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기대하고, 변화할 수 있기에 설렌다. 때로는 우연이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우연이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제는 그런 예측 불가능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흥미롭고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사유한다. 먼 훗날 언젠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때, 아마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을 것이다. 무수한 '우연'들이 만들어낸 '필연'들이 결국 나만의 서사('운명')를 완성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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