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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냥 마음이 편한 친구가 좋다.

이상적인 벗에 대한 사유

by 모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또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군대, 대학,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세계를 거치면서 내게도 많은 친구들과 무리가 만들어졌고, 스쳐갔다. 각 무리마다 성격과 분위기는 다 다르다. 지난 여로의 환경이 각자 다 달라서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내 성격이 변한 까닭일 수도 있다. 만나면 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현재의 삶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도 있다. 때로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순간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방학을 맞이하며 여느 때처럼 친구들을 두루두루 만나며, 문득 든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릴 때 내겐 ‘좋은 친구 관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는 그것만이 건강한 친구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친구 무리들을 보며 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다. 단순히 웃고 떠드는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생각했고,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가치 있지 않다고 여겼다. 벗이란 서로의 발전을 도와야 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생각은 점점 변해갔다. 이상적인 관계라는 것은 결국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낸 하나의 틀이었을 뿐, 실제 인간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란 꼭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야만 의미 있는 존재일까? 반드시 무언가를 배우고 깨달아야만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기준을 내려놓고, 그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고 느낀다. 꼭 거창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꼭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친구들. 그런 관계가 오히려 더욱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관계에 대한 내 가치관의 변화에 선명한 이유나 계기는 없다. 단지 매일을 전쟁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아무런 이유 없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을 뿐이다. (첨언을 하자면 요즘은 마음이 편한 친구도 좋아졌다는 것이지 그 외의 어떤 친구들은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친구 관계에 정답은 없다. 어떤 친구는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가 되고, 어떤 친구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웃고 떠드는 사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내게 어떤 감정을 주는가이다. 결국 친구란 ‘나와 함께할 때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서로가 편안할 수 있는 존재’ 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나는 사유한다. 과거엔 이상적인 관계를 좇느라 스스로 벽을 세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벽을 허물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더 큰 편안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에 대한 가치관은 조금씩 변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한, 그런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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