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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글쟁이가 되었나.

글을 쓴다. 내 안의 우울과 불안을 존중한다.

by 모스




나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바쁘거나 일이 생겨 결국 끝끝내 미루다 4학년이 되어서야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아리는 주에 한 번씩 합평회에서 동인들이 쓴 글을 읽고, 서로 피드백을 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누군가는 사랑을 써 내려갔고, 또 누군가는 우울을 자신만의 보폭으로 기록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글이라는 하나의 공통적인 매개로 모인 모임에 참가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어떤 결핍을 품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해당 사유에 선명한 이유는 없다. 그냥 형용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글과 말과 행동에서 그런 것들을 느꼈을 뿐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들었나.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시렸던 겨울,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험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종이 한 장에 박힌 숫자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허무함에 점철된 감정에서 빠져나오고자 선택한 것이 글이었다. 당시 글은 내가 세상에서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은 순간에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사실 요즘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난 글을 꾸준히 쓰는 편은 못된다. 나는 보통 글을 한 번에 왕창 대략적인 가닥만 잡아놓고, 그 이후에 글을 올리는 날이 다가오면 때에 맞춰 첨삭을 하는 편이다. 글을 왕창 쓰는 날은 영감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날이다. 평소엔 머리를 쥐어짜도 안 나오던 글감이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선물처럼 밀려온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내가 대체로 공허함이나 슬픔에 젖은 날이었던 것 같다.


글을 처음 쓰게 된 것도, 그때의 감정이 흐려진 지금도 여전히 펜을 들게 하는 동력은 결핍이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예전에 글은 내게 나를 지키고자 하는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나의 불안과 우울을 존중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글을 어느 정도 오래 써보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보니 알겠다.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는 것을 말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유려하게 구사하는 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감수성,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결핍을 함축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나는 믿는다.


문체가 뚜렷하다는 것은 자기만의 확실한 세계가 있다는 것.

글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결핍과 방황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는 것.

글을 논리적으로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명확히 체계적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것을 사유하고 성찰했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흔을 꺼내어 문장으로 엮을 때,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들이 모여 우리를, 또 우리의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끄적이고, 눈에 담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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