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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시절에 머물던 방식은 늘 음악이었다.

feat. '난, 말 그대로 지금 일부 죽어있는 상태다. (정단우)'

by 모스




그런 날이 있다. 괜스레 옛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속절없이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 지나온 세계들마다 “이제는 미련도, 후회도 없다”라고 다짐했지만, 문득 그런 결심마저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 말이다. 어릴 적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아직 그것을 완전히 놓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리움은 미련이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을 향한 조용한 경의라는 것을..


그렇게 지난 시간을 애틋하게 꺼내고 싶은 날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찾는다. 내가 그 시절에 머물던 방식은 늘 음악이었다.


'내 사랑 내 곁에(김현식)'를 들으며 아버지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향하던 어린 날의 풍경을 떠올린다.
'신촌을 못 가(포스트맨)'를 들으면 중학생 시절, 처음 친구들과 서울 나들이를 떠났던 그날이 다시 살아난다.
‘나의 사춘기에게(볼빨간사춘기)’를 들으면 고등학교의 어설픈 일탈이 생각나고, ‘Love Lane(마마무)’를 들을 때면 학창 시절 룸메이트와의 밤샘 수다가 그리워진다.

‘Wake Me Up(Avicii)’을 들을 땐 재수 시절의 외로운 새벽들이 문 앞에 선다.
‘시가 될 이야기(신지훈)’는 군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들을 떠올리게 하고, ‘혼자 남은 밤(김광석)’을 들을 때면, 군 시절 억울함에 북받쳐 주방 한켠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던 밤이 떠오른다.


이렇게 음악은 단순히 멜로디를 넘어서, 하나의 기억이 되고, 그 시절의 웃음과 눈빛과 말투 그리고 그때의 나를 불러온다.


음악이라는 게 꼭 음악만은 아닐 때도 있는 것이어서 듣다 보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음악은 애쓰지 않아도 꼭, 채에 걸러진 알맹이처럼 남았다.

'난, 말 그대로 지금 일부 죽어있는 상태다.(정단우)'의 일부


브런치의 글을 읽다가 문득 보게 된 이 문장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위 글처럼 음악이란 때론 단순한 소리가 아닐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배경처럼 흘러가는 멜로디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音樂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노래엔 나의 시간들이 자연스레 녹아있다. 음악을 감상하는 순간엔 그 시절의 ‘나’가 되어 돌아오고, 잊고 살던 ‘너’가 되어 스며든다.


음악이란, 그 자체로 완성된 예술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정을 감싸주는 담요가 되고, 삶의 흔적을 보관하는 상자가 되며, 때로는 말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대신 전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떤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를 추억하고, 잊은 줄 알았던 감정과 재회한다.

그 시절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음악은 언제나 그때로 나를 데려다준다. 조용히, 그리고 정확하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그 모든 순간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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