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해.

여러분은 언제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하시나요?

by 모스




요 근래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 출근길 공기가 조금 무거워지고, 퇴근 무렵 하늘이 빨리 어두워지는 걸 체감할 때면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계절의 변화는 늘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특히 가을의 초입은 더 그러하다. 마침 추석까지 맞물리며 자연스레 오래 연락하지 못한 이들과 안부를 주고받게 되고, 그 사이에서 나를 묵은 사진첩 앞으로 데려다 놓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갤러리를 열면, 거기엔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우리’들이 있다. 어떤 사진은 웃음으로, 어떤 사진은 약간의 쓸쓸함으로 나를 맞이한다. “아, 이땐 이랬지.” “그땐 저 친구랑 맨날 붙어 다녔는데.”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싶은 행동들과, 그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들이 겹쳐진다. 그 속의 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사진 속 나는 더 단순했고, 솔직했다. 때로는 감정이 앞섰고, 때로는 불안에 흔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게 되돌아보면 그 시절의 ‘우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진 지금의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지만, 과거의 인연들은 그렇지 않았다. 전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내 옆에 있었고, 그들의 성격과 말투, 취향과 습관이 조금씩 내게 스며들었다. 감정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조금은 이성적으로 변한 건, 그 시절 이성적인 누군가를 오래 곁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힙합을 듣지 않던 내가 지금은 종종 랩을 흥얼거리는 것도, 한때 힙합을 지독히도 사랑하던 친구 덕분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면, 내 안에는 수많은 ‘우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함께 웃고, 다투고, 울고, 또 멀어졌던 사람들의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상 속에서 문득 그들을 만난다. 어떤 나의 행동에서, 어떤 나의 취향에서, 즐겨 듣는 어떤 노래의 구절에서, 어떤 장소에서.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엔 몰랐다. 왜 사람들은 “옆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지. 나는 나고, 친구는 친구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옆의 사람이 누구냐가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와 같은 거시적인 부분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의 취향이나 습관 같은 미시적인 것들을 결정한다는 것을.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있을 때 더 많이 변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한다.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 시간 속에서 당신들의 편린은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연이란 참 묘하다. 한때는 스쳐 지나간 것 같지만, 사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들이니까.


그리고 나는 또 묻게 된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우리’를 만들어갈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순간을 함께 쌓아가고 있을까. 시간이 흘러 언젠가 이 시절의 사진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나와 어떤 우리를 떠올리게 될까.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가끔, 그때의 우리를 추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