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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보다 가족간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 아이들을 둘러보면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오히려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가 있으면 이상하게 보는 눈치이기까지 하다. 영어 학원, 수학 학원은 기본에 이것저것 아이들이 배우러 다니는 것이 참 많다. 가만 보면 우리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일과가 더 빠듯하다.  

학교 다녀와서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느라 간식도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저녁식사도 밖에서 대충 때우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열심히도 산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근면, 성실해야 잘 산다는 생각이 머리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산다는 것, 뭐든 성실하게 잘 한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아주 훌륭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다들 앞만 보고 달려간다. 참 바삐도 살아간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간다. 그것이 미덕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잘 살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근면·성실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사니까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한다. 내 아이는 옆집 아이에게 뒤질까 봐 더 열심히 공부를 시킨다. 내 아이의 미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가면서 놓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벌써 사회적 쟁점이 되어 가고 있는 문제들…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원 가기 싫어, 공부가 힘들어 자살을 선택한다.'  

'기러기 아빠가 자살했다.'  

'과도한 교육비로 노후에 빈곤해지는 삶을 살게 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이리도 열심히 하는데도, 모두가 불행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이들은 학원으로 공부로 내몰려 부모와 소통할 시간이 없고, 부모는 아이 학원비 대느라 정작 아이 눈 한번 마주칠 시간이 없다. 그 자살했던 아이가 엄마와 소통이 되었다면 그래서 그 엄마가 내 아이가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아이가 자살하도록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살한 기러기아빠 역시 내 남편이 그 정도로 힘들었다는 것을 부인이 알았다면 자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 그 안에서 어떤 행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명문대 진학이나 공부만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길일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지나친 사교육으로 가족 간에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고, 누구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학원수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아이의 성적보다 아이의 정서적 행복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부모와의 소통, 부모와의 관계가 더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 간에 화합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해서 생기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이 사랑받고 이해받고 소통해본 사람이 사회생활도 원활하게 잘 해낼 수 있다.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될까? 친구들과 뛰어놀며 어울리는 법, 화해하는 법, 소통하는 법을 모르고 공부하는 기계로만 자라난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척박할까?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공부하는 기계로만 키워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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