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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Jan 02. 2024

예측불가한 행성에 착륙

행성에서 하루를.. 

예측불가한 행성에서 하루를 

이번 새해가 좋은 점은 강제로 지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 중심으로 일상을 살아가던 지난 몇 년간은 그저 다가오는 일정을 소화하기 바빠 '월'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자칭 프리랜서이자 백수가 되자 자동으로 달력이 클린 해져 '일'보다는 '생각' 중심의 매일을 보내고 있기에 매월이 더 크고 불안하게 다가왔다. 

요동치는 심신을 달래기 위해 노션을 일기장처럼 사용해 왔는데 한 해를 정리하면서 보니, 새삼스럽다.
태생부터 정리와 계획을 지지리 못하는 P형 인간답게 노션도 뒤죽박죽이다. 한결같으니까 오래 살겠다.      

흡사 탈출일기 같기도 하고 생존일지 같기도 한 23년도 노션페이지는 완성되지 못한 것들 투성이다.    

예전 같았으면 완성하지 못한 계획들을 보며 스트레스받아했겠지만, 24년의 나는 그곳을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옮기려 한다.(이는 가끔 스스로를 우주를 떠도는 인공위성이고 지금은 정착하기 좋은 행성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살기에 나온 발상이다. @.@) 

그래서 오늘은 새해 기념 24년에 새롭게 찾은 행성에서의 하루를 써볼 것이다. 

아침 7시, 에너지 장전 

삼십 대가 되면서부터 지켜온 유일한 루틴인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는 세수로 가볍게 깨우고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으면 1차 준비가 끝난다.
그리고 바로 흥을 돋아 줄 신나는 음악을 켜 문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발이 공원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10여 년째 살고 있는 동네엔 운동에 최적화된 공원이 5분 거리에 있기에 어느 시간 때에 가도 편히 들릴 수 있다. 어찌어찌 공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런데이 선생님을 재생시키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뛰는 걸 무진장 싫어해서 지각해서 뛰는 상황 외엔 절대 달리지 않는 내가 즐기며 뛸 수 있게 된 건 100%
'런데이' 앱 덕분이다. 좀 웃기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자세 교정은 물론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훌륭하다" 등의 멘트를 쉬지 않고 하는 가상 코치님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보통 한번 할 때 30분 정도를 달리는데, 온몸으로 에너지와 다양한 감정을 충전하는 느낌이 든다. 

활기찬 가상 코치님의 목소리에 힘입어 숨이 차오르면서 벅찬 감정, 고통, 소중함, 기대감  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오후 2시, 대기 불안정 

좀처럼 집에 있지 못하는 떠돌이형 인간인 난 짐을 주섬주섬 싸서 코워킹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왔다.  

아침에 풀충전한 에너지를 갖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 게이지가 쑥 내려간다. 매일 똑같은 사무실을 출근할 때는 그렇게 탈출을 외치더니, 정작 자유가 왔음에도 즐기지 못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규격에 딱 맞춰 늘어선 [선] 안에서 생활할 적에 몰랐는데 막상 자유인이 되니까 눈 씻고 쳐다봐도 도저히 선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허공에 둥둥 떠있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나마 최근 명상과 심신 안정용 책들을 읽은 탓에 둥둥 떠있어도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즉흥적인 대책 없는 나의 지침서는 [힘든 일을 먼저 하라]란 책인데, 우선순위를 잡고 루틴화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쉽게 알려준다. 그동안 봐온 유사한 책들과 비교해 보면 가장 따라 하고픈 욕망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디테일하고 당장 실현가능한 일들로 최소한의 목록을 만들어라!] 

끄적끄적 열심히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어본다. 

아뿔싸, 이건 구체적인 목표라기보단 공상가가 쓴 낙서 같은데.. 


오후 4시, 자원조사

홀로 사업자를 내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뒤부터 나쁜 습관하나가 생겨났는데, 그건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해, 어려워"라는 말버릇이 생긴 것이다. 

팀원들이 있었을 때는 서로 잘하는 분야나 역량이 달랐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충족이 되었는데, 

혼자서 이 역할도 저 역할도 다하려고 하다 보니 새삼 무능력한 인간이었구나를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 샛길로 빠지곤 하는데, 그게 바로 *자원조사이다. 

*내가 가진 역량이 부족한 듯하니까 필요한 부분을 계속 찾아보고 비교하고 찾아보고... 

이미 머리로는 부족해도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수백 번이고 넘게 알고 있다. 메모 여기저기에

[그냥 하자. 그냥 하자!]가 도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리 잘 안된다. 

아마 깊은 무의식 안에 완벽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각인처럼 새겨져 있어서 그런가 보다.  

인정욕구가 너무 강해 어떤 일을 해도 강박에 시달리는 행위를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해봐도 역시 쉽진 않다.   


오후 6시, 스킬 총동원 

심판과 감시자가 상시 존재하면 불편하지만 과업을 끝마치기 위해 아주 열심히 한다. 

하지만 이 행성에서는 감시자는커녕, 구경꾼도 전혀 없는 깨끗한 곳이다. 그래서 할당 치를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없이 너그럽다. 거기다가 평소 재능 있던 미루는 스킬까지 마구마구 사용하면 제자리걸음이 된다.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기만 할 뿐,  실제로는 그저 낙서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내일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늘 예측 불가한 상태가 된 거겠지 싶다.  

그래도 다음 날의 심신 안정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을 고른다. 주제도 내용도 시간도 명확한 명상을 참여할 땐, 그 누구보다 성실하다.   

내일도 예측불가? 뭐 어때 

얼마 전에 별생각 없이 재미를 위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봤다. 웬걸.. 가볍게 즐기고 기분까지 좋아지니 선택한 가오갤 3가 예상치 못하게 작은 키를 전해주고 갔다. 

영화에선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는 전혀 관계없고 그냥 뜬금없이 혼자 주인공들을 보며 느낀 것이다. 

매일 다른 외계생명체들과 부딪히는 그들은 적진(?)에 쳐들어갈 때 정말 대책 없이 그냥 쳐들어간다. 

적들의 수가 얼마인지, 그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저 대결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에겐 아무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나도 가진 자원도 더군다나 구체적인 루트나 계획이 1도 없지만 그저 그냥 나아가보면 된다.

새롭게 찾은 행성이 좋은 곳인지 어떨지는 지금도 앞으로도 알 수없지만 발을 디뎠으니까 뭐든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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