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기록자 Jan 15. 2024

어디로 가야할까요?

몇 번째 문을 열어야하나

우리집 가훈 

: 스스로 뜻을 높이 세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초등학생 2학년 무렵, 담임 선생님은 '집의 가훈 써오기'를 숙제로 내준적이 있었다. 가화만사성만 써붙여있던 우리집에 가훈이라는게 있었던가?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와 난 곧장 부모님께 가훈을 써가야한다는 통보를 했고, 그것은 곧 우리 가족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허나 아버지의 말이 법이고 규칙이었던 우리집에서는 가훈 역시도 그의 생각이 100퍼센트 반영된 것이었다. 

열심히 한자 한자 쓴 가훈이 마음에 드셨던 아빠는 즉시 집안 곳곳에 문장을 붙여놓고 나와 동생들에게 소리내어 외우게 하셨더랬다. 선생님 덕분에 가훈이자 뇌리에 박혀버린 문장이 탄생한 것이다.  


영어단어, 한자 등등은 죽어라 외어도 기억도 잘나지 않는데 가훈은 누가 몸에 새기 것 마냥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내 가치관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나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닿을 수도 있는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꿈꿔왔고 어릴 적 즐겨읽던 멘토들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둔 이들었다.   

당연하게 10년,20년 뒤에는 그들처럼 높은 목표지점에 서 있는 어른이 되리라 생각한 '나'였다.  


" 10년 뒤엔, 세상에 도움되는 사업을 만들거야. "

프로 열정러였던 대학생 땐 적성, 꿈찾기에 박차를 가해 남들은 토익공부, 취준 등등을 할때 나와 내 친구는 둘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정해진 목표가 뚜려하면 걸어가는 루트도 편하고 명확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읽었던 성공담을 보면 그들의 삶은 일목정연하게 정리되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적성과 개인성향, 좋아하는것, 잘 할 수 있는것, 못하는 것 등등 끊임없이 나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 수록 뚜렷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었던 내게 꿈은 하나로 정의내려지지 않는 교집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모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난 동아리를 운영하며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스마트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복지관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었다.(스마트폰 초기 시절)   


그러다 반응이 좋아 옆 동네 복지관에서도 요청이 왔고 현장에서 즐거워하시던 어르신들을 보며 스멀스멀 '기획자'란 꿈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좀 더 거창하게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 

내 꿈이 조금 더 완벽하고 세세한 형태를 갖추기를 원했다. 


그리고 우연히 참가한 3박 4일간의 진로캠프를 계기로 견고해지게 되었다. 

[ 00님이 좋아하시는 게 여행,글쓰기, 모임, 사람들, 봉사, 심리치료 인가요?] 나눠준 종이에 끄적인 글을 보며 진행자가 물었다. 당장 실현가능한 일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보라는 그의 말에 따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한창 꽂혀 듣고 있던 국제개발 수업 덕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국제구호사업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오호, 전 세계를 돌면서 국제개발 영역에서 도움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 


문을 열고 열고 열면 나오는 것

드디어 가훈처럼 뜻을 높게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 마치 앞으로 나가는 길을 정한 마냥 설레기만했다.

관련 자격증과 영어 회화, 토익 점수 등등을 준비하면서까지도 벌써 세계 한 복판에 서있는 활동가가 되어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김치국을 원샷하며 장기해외봉사 지원과 함께 휴학신청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어서오세요~]  

목적지가 내가 꿈에 그리던 르완다였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병원이었다. 해외에 갈 생각에 무리하게 영어공부에 봉사활동, 아르바이트를 보내자 결국 쓰러졌던 것이다. 

그저 스트레스인 줄 알았건만, 예정에도 없던 자궁 근종을 떼어내는 수술로 인해 3개월간 강제 휴식기를 가지면서 정말 말그대로 휴학을 실천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현지에 가서도 비실비실거려 도움은 커녕 중도에 아파서 되돌아왔어야 했을테니 하늘이 미리 도움을 준걸거다. 


우물 안 작은 개구리였던 난 운도 지지리 없다며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겨우 찾은 꿈이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심지어 함께 준비했던 아는 오빠가 르완다에서 활동하는 사진까지 보내주니, 내안의 못난 열등감이 활활 불타올라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껏 삐뚤어진 상태로 휴학이 끝나기 전,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을 찾아갔다


따뜻한 차를 건내던 교수님께 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교수님, 해외 봉사도 아파서 못가고이번에 지원한 인턴들도 모두 떨어졌어요. 후 진로를 잘못 정한걸까요? ] 

마치 엄청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 마냥 그녀는 한참 동안 웃은 뒤 내 팔을 쓰다듬으면 말했다. 


마흔이 넘은 나도 아직 내 진로를 찾고 있는 중인데, 뭐가 그리 급하냐?
있지,내가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앞에는 문이 수십 개가 있고 그 문들을 하나씩 열 때마다 새로운 길이 보인대.
그리고 그곳을 열심히 지나다 보면 다 다른 길이라라고 생각했던 길들이 어느새 이어지는 날이 온다더라고.
그러니까 넌 되도록 많은 문을 열어봐. 


수십개의 모두 다른 문,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다른 문이라...  

그저 소설 속 이야기 같던 교수님의 말이 방황할 때 마다 위로가 되곤한다. (교수님 잘지내시죠..)    


나는 몇 번째 문을 열고 있는걸까? 

이야, 일찍부터 꿈에 대해 고민하니까 더 오래오래 고민하는 것 같다.

최근 대학생 때부터 함께 진로 고민을 나누던 친구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이다. 

열정 대신 번아웃과 부실한 체력을 덤으로 얻은 지금도 여느 때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중이다. 원래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가짓수가 적었는데, 열정마저도 저 멀리 사라져 버려서 더욱더 찾기가 어려운 것 같긴 하다. 


과거 교수님의 말씀처럼 문을 열다 보니 그곳들을 지나고 있긴 했다. 또래에 비해 일찍 취업한 탓에 쉴 새 없이 정신없고 바쁜 20대를 보낼 땐, 벌컥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걸어갔다.


너무 닥치는대로 열어서 그런걸까? 

뚜렷하게 경력으로 내세울 만한 것도, 하나의 직업으로도 정의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태의 어른이 되었다. 

편의상 기획자라고 하긴 하지만, 행사기획도 조금 사업기획도 조금 거기다가 게임기획까지 조금 조금씩 한 나를 잘짜여진 틀안에 넣어 포장하려하니 계속 삐져나온다.   

  

벌컥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할 시점인 건 분명히 맞는데, 어느 문을 열어야할지, 어떤 문 앞에 서있는지 조차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또 다시 스무 살 초로 돌아간 것 같다. 

(돌아가라는 체력은 돌아가지 않고 자아만 리셋된 걸까? ㅋㅋ)   


그래도 어느 문을 열더라도 다 살아갈 길과 그 안에 느껴지는 만족감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  

일단 아무 문이나 잡고 열어봐야겠다. 새해니까. 


이 또한 시간이 많이 지나면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고 편안하게 회고하는 날이 오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예측불가한 행성에 착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