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기록자 Jan 23. 2024

04. 도전! 속성 게임 암기?  

겜알못이 어쩌다가 게임 기획을 하게 되었을까

   

자유분방한 기획서

2019년, 본격적으로 상업용 게임을 만드는 시점부터 초짜 게임기획자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건축 시, 건축의 기초와 방향이 되는 설계도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획서는 함께 작업할 디자이너, 개발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허나 그들이 받아 본 기획서는 그저 난해하고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 기획서였으니..  


이는 평소 사용한 메모장에도 고스란히 나타나는데,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의 낙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기획서에서마저도 자유분방한 정신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날 줄이야


과거에 사업 제안용 제안서나 공문서, 보고서 등은 자주 써봤으나, 시놉시스와 플로우가 있는 게임 기획서는 처음 작성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두서없는 외계서(?)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단기간 안에 사업 성과(참가자 수, 판매 매출 등)를 내야만 하는 지원사업을 받고 있는 터라, 각 잡고 게임 기획을 배울 시간은 더욱더 없었다.  


틀 안에 들어가는 방법 찾기?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대표는 게임 기획서 양식을 여기저기 다운로드하여 내게 [틀에 맞춰서 작성하라]는 오더를 내렸다. 노트의 줄칸마저도 삐져나오게 글을 쓰는 나란 인간에게 틀은 그저 거추장스럽고 사고를 제한하는듯한 갑갑함까지 들게 해 작업 시간만 더디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내게도 아주 약간의 장점이라는 게 있었으니, 그건 사람들의 피드백이나 참고 자료, 게임 기획 전문가들의 조언 등을 나만의 방식으로 섞어 그럴싸해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래! 틀 안에는 못 들어가지만 비슷한 틀이라도 내식대로 만들어보자' 

먼저 테스트에서 얻은 소중한 설문지들을 펼쳐놓고 기획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아 아쉬웠어요.] 

놀랍게도 당시 쓰고 있던 새로운 기획서에서도 발견된 똑같은 문제점이지 않는가.   
게임이 전개될 때 기승전까지는 너무 힘을 주다가 허무하게 얼렁뚱땅 맞이하는 결말..  

 

이는 처음부터 부실하게 플로우를 작성하여 실제 게임을 만들면서 살을 붙이는 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예고된 부실공사였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게 찾은 여러 게임기획자들의 시스템 기획서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들의 시스템 기획서안 플로우 차트를 따라 그리는 연습을 천천히 하였고,
 구조를 이해하게 되자 허접하게나마 나만의 플로우를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거대한 스토리보드판과 함께 

1차 회의를 통해 게임의 주제, 테마, 배경 장소(실제 지역)가 정해지고 나면 1차 스토리 안을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거미줄 같은 내 산만한 내 뇌구조를 거치고 나면 복잡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꾸역꾸역 메모장을 써보기도, 이면지를 사용해보기도 했으나 복잡한 머리를 좀처럼 정리할 수 없다.  
이럴 땐 과감히 책상을 떠나 화이트보드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야 한다.   

(당시 사무실을 지원받았기에 회의실 이용이 자유로워 틈만 나면 회의실로 기어 들어갔다.)    


휘갈겨 쓴 거대한 낙서가 보드를 가득 채우고, 또다시 지워지기를 3~4차례 반복하다 보면 기획안의 방향과 흐름을 겨우 잡을 수 있게 된다. 가끔 지나가다 들린 다른 팀 동료들에게 미친 박사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긴 했지만, 산만하고 자유분방한 머릿속을 한껏 풀어낸 덕에 [나만의 플로우를 그려내는 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본격 속성 게임 암기반 

그때까지만 해도 팀 내부에 앱 콘텐츠 개발자가 없었던 시기라, 최초 개발 때 제작한 앱 시스템 안에서만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게임에서의 앱의 존재가  <퍼즐조각 맞추기, 문자 입력 >등의 단순한 정답입력용 장치에 불과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몰입감도 주고 재미도 줄 수 있지?]  

이런 고민들은 언제나 우리의 큰 회의 안건이었다.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들 거기서 거기인 생각들 뿐, 고심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직접 게임을 사서 많이 해보자였다.' 아마도 그게 우리의 밤을 <속성 게임 암기반>으로 만드는 시작이 되었는지도..   


숙소 생활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밤이 길다는 것인데, (* 1년간 지역 내 숙소에 머물며 교육과 성과 발표를 해야 했음) 실제 숙소와 공동 사무실의 거리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슈퍼 행동력 대장인 대표는 그날로 보드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덕에 몇 개월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게임을 하는 부엉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업체처럼 동료 창업팀들을 모집해 함께 새벽까지 게임을 하곤 했다.
다들 본업보다 진심으로 임했기에 사무실의 불이 꺼지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주변 상인들이 보기엔 밤늦게까지 청년들이 모여 밤새 일하는 것으로 오해하셨을 정도로 활기찼다.    


당시 하루는 보드게임을, 또 다른 하루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면서 나만의 습작노트를 만들고자 애썼다. 실제로 즐기고 좋아하게 된 게임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면서도 정교해서 그냥 취미생활이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밤새 각종 보드게임을 하던 날들 


게임 기회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게임 기획을 하던 그때도, 하지 않는 지금도 '사회복지사'였던 이력을 보고 종종 하는 질문이다.  

대답하기 민망해 그냥 '독학했다, 혹은 다른 게임기획자들 기획을 많이 참고했다'라고 얼버무리는 곤 하는데 

진짜 내 대답은 [게임에서 정말 많이 배웠고 많은 영향을 받아 작업할 수 있었어요]인 것 같다.       


실제 제작된 초기 게임들을 보면 퍼즐형 보드게임, 추리형 보드게임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 게 티가 난다.

쉼 없이 많이 즐겼던 때문일까? 만들 땐 미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 함께한 친구들(다른 팀 동료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자극제가 돼주었다. 
풀어나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좋은 영감이 되었고, 그들 덕분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자원이 또 있을까. 


만약 내가 게임 관련 서적만 뒤적이면서 혼자 고민했다면 늘 제자리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근처에서 바로바로 피드백을 해주고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툭툭 건네주는 그들이 있어서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이러한 행운들이 모여 게임기획자의 세계로 얼렁뚱땅 들어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03. 두근두근, 첫 테스트(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