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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Feb 01. 2024

05. 떠돌며 일하는 기획자

겜알못이 어쩌다 게임기획자가 되었을까?

사무실에 잘 안 계시나 봐요  

외부(기업이나 정부기관 등등)에서 나와 우리 팀원들에게 늘 묻던 질문 중 하나였다. 

지역 자원을 활용하여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사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우린 밖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역마살이 탑재된 내겐 매우 감사한 일이었지만 우리 사무실에겐 안된 일이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정도 지역에서 머물러야 했기에, 주변에서는 유령회사로 오해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본격적으로 게임 배경 지역이 선정되고 나면 실존 지역을 세세하게 뜯어보고 게임화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우선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에 대해 공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 된다.  

학생 땐 지리, 역사 수업이 지루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일로써 접한 설화나 유적지 정보 등은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직접 그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해설사분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으면 생생하게 와닿는다.  

동네를 떠도는 이상한 젊은이

한 때 1년가량 군산을 머물며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숙소, 공유사무실 간의 거리는 10분 정도로 매우 가까워 주로 슬리퍼, 트레이닝 복장으로 돌아다녔다.

군산의 여행지이자 게임 장소인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었으니, 한껏 꾸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백수차림으로 잘도 걸어 다녔다.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실제 게임 장소들을 6군데 이상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른 장소들의 모든 것들은 퀘스트로 제작하는 귀한 자원이 된다. 가령 길 오래된 가게 앞에 있는 은행나무, 동상들, 벽화 심지어 길에 놓인 돌 하나까지도.   


하나의 스토리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 형식이기에 플레이어가 최대한 매끄럽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심각한 길치인 내겐 게임 동선을 짜는 일마저도 어려웠다. 

그래서 동네 구석구석을 해 집고 다니기 일 수였는데 가끔 빈집 같아 보인 오래된 건물을 들여다보다가 수상한 눈초리를 받기 일 수였다. 거기다가 복장마저 허름하니 매우 수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골목을 다니며 " 저기, 어느 집 찾아왔어? "묻던 동네 토박이 할머니와는 나름 친해져 그곳을 지날 땐 따뜻한 커피 한잔을 얻어먹는 소중한 추억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정답은 의외의 곳에서 

자료 조사라는 명목으로 떠돌아다닐 때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사진으로 담는 것이다.  

늘 하는 실수가 있었는데, 사진을 세세하게 찍어두지 않아 바보같이 다시 똑같은 곳으로 가는 일이다.

퀘스트와 디자인 작업을 위해선 '사진 너무 많은데' 싶을 정도로 충분할 때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다.


상상 속에선 좀 전에 본 간판 사진을 보며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라 뚝딱하고 퀘스트 하나가 완성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난장판이 된 스토리보드판과 사진들 속에 파묻혀 멍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당시 만들고 있던 <시간 속 갇혀버린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하루종일 사무실에 갇혀버린 후, 하루가 꼬박 흘러갔다. 퍼즐에 대한 아이디어도 뒤죽박죽 한 스토리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던 그때, 

[00아 새로 오픈한 편집샵 구경 가자] 동료 팀의 유혹적인 제안에 홀려 그대로 편집샵으로 향했다.   

  

답답함과 다가오는 마감일에 대한 불안감을 피해 도망치듯이 들린 편지샵은 그날따라 더 재밌게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골동품 시계를 바라보는데, 그토록 원했던 기막힌 아이디어가 스치는 것이 아닌가?   

 

그 길로 바로 작업실로 달려가 노트에 아디이어를 기록했다. 

실제로 이 아이디어는 오래된 극장의 외벽의 특이한 문양들을 활용한 폭탄 시계 암호로 활용되었다.

  

그 이후로 종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줄만한 소품들을 사거나 사진을 찍어두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다. (다른 예시지만, 당시 영화관을 배경으로 했기에 옛 극장을 보고 티켓을 떠올렸다)    

미션지 일부 

조금 다른 기획자지만 괜찮을지도

누군가는 재밌어 보인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출장을 자주 다녀서 번거롭게 다는 말을 하곤 했다. 

예전에 행사 기획을 할 때도 행사장이나 관계자들 미팅을 위해 밖을 다니긴 했지만, 확실히 이런 작업 방식은 아니었다. 


큰 틀의 목적은 있지만 영감을 얻을 때까지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 내 일이라는 게 재밌다.

길가에서 흔히 보이는 표지판, 돌멩이들도 게임요소로 쓰일 수 있기에 어느 하나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사실 기획자로서의 기술적인 역량보다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을 이 나이에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더 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는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특이한 낙서를 보면 한참이나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다. 

뇌에선 자동으로 '저 낙서로 연관시킬 수 있는 게 없을까?'와 같은 질문 시스템을 만들어내나 보다.

 

호기심이라고는 지지리 없던 난 비로소 엉뚱한 기획자로 성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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