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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Feb 20. 2024

06. 불가능을 기회로 만드는 대화법

겜알못이 어쩌다 게임기획자가 되었을까?

새로운 발전?  

창업 2년 차가 되던 해에 우리 회사에도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게임 콘텐츠만을 전담해서 개발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자가 생긴 것. 드디어 고정된 틀에서 기획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마음껏 구현하고 싶은 대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마치 그전엔 고른 돌을 그냥 일직선으로 쌓아야만 했다면, 콘텐츠 개발자의 합류 뒤엔 돌과 시멘트를 섞어 건물을 만들 수 있게 된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엄청난 발전인 것이다.  


날개도 달았겠다. 이제 빠르게 빠르게 콘텐츠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평균 게임 제작 시간이 더 늘어만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같은 한국말을 쓰는 것 맞지? 

사실 주먹구구의 정석처럼 일했던 나와 디자이너의 소통에는 늘 문제가 있었다.  

오랜 시간 친구였던 우린 <대충 말하기> 화법을 일을 할 때도 고수하곤 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저기 그거 다했어? " 

"...... 응 그거? " 

"저어이기 있는 그거 말이야. "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대충 말하기 소통으로 틈만 나면 서로 니탓 내 탓하기 바빴다.
 '저 인간의 화법이 문제인 거야. 말귀를 못 안 듣는 게 문제라고'


콘텐츠 전담 개발자가 오자 우리의 소통 문제는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새로 온 개발자에게도 고수해 오던 개떡 같은 소통 방식을 썼기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써 모른 척해왔던 <불통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타협점을 찾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주된 공통 의견은 서로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분명 같은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두 번 세 번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만해도 명확한 용어 대신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써놓고 상대가 알아서 이해하길 바란 적이 많았다. 

듣는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지껄이던 외계어는 우리 일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편하고 아는 사람하고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당연히 내 말을 이해하겠지 혹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들이 문제였으리라..  


진행자가 되어 보는 거 어때요?  

잦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상해 비난이 오가는 우리 사이에 낀 개발자가 차분하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제가 보드게임 할 때 보통 진행자를 하거든요. 그때 전체 흐름을 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보다 규칙을 천천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는 것도 중요해요. 무엇보다 진행자가 설명할 때 플레이어들은 집중해서 잘 들어줘야 해요. 우리도 보드게임처럼 해보는 거 어때요? 돌아가면서 진행자 되는 거요!"  

 

개발자의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너무 부끄러웠다. 과거의 난 마감 기한에만 쫓겨, 친절한 설명은 모두 생략한 채 그저 디자이너가 이해하고 무작정 따르기만 바랐다.   

돌아보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준 적이 있기나 했나 싶다. 그저 자꾸 태클을 거는 친구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의 제안 덕에 우리는 서로에게 '설명 타임'을 갖는 것을 필수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이때 들어주는 상대는 말하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끝까지 들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렇게 느리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한 소통법이 시작되었다. 

불가능한 건 없죠.  

디자이너, 기획자 2인체제로 작업할 땐 시각적인 효과를 디자이너에게만 의존하였기에 충돌이 잦았다.

앱 디자인과 실물 키트(제품) 디자인까지 동시에 했던 디자이너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개발자가 들어온 뒤로 앱 내 다양한 기능, 효과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게임 시스템 구조를 색다른 방식으로 짤 수 있어지면서 게임이 훨씬 풍부해진 것이다.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조물주가 되어 상상한 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엔 고정된 시스템 안에서 제작하다 보니 게임 속 세상은 한 없이 좁았다면, 개발자가 오면서 이 틈이 활짝 열린 문 같이 넓어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 회사에 복덩이를 영입한 것이다. 역량적인 부분 외에도 그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문제를 대하는 태도>였다.      

게임 마니아인 그 친구는 스테이지를 여러 방법으로 깨는 것을 좋아해 일부러 한번 클리어 한 게임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한다고 했다.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전략을 깰 수 있는 기회라고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불가능한 건 없죠. 고민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으르렁거리면 싸우던 우리가 어느새 웃으며 대안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춘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개발자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팀이 되다.  

게임 작업은 가장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을 수 있는 만큼 정교한 프로세스도 중요하다.    

1~2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앱 화면설계서, 게임 스토리 등을 우리 팀원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성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서부턴 우리는 최적의 농구팀이 되어있었다. 


1차 기획안을 가지고 회의가 진행되면 다음은 화면설계서를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각각 검토하게 된다. 

개발자가 기획에 따라 기본적인 틀을 잡고 있는 사이 디자이너는 전체 콘셉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이후 게임에 필요한 세세한 디자인 소스를 만들며, 개발자와 논의해 기능으로 구현하는 한 시각적 효과 등을 

선정하고 1차로 시현할 수 있는 가안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다.  

기능 테스트, 사용자 테스트 등등의 수차례 반복되는 수정 지옥을 무사히 거쳐야만 하나의 게임이 나온다.   


짐승같이 싸우던 우리가 이젠 서로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하나의 팀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있었는데... 

너와 나, 우리의 최애 게임 

관심사와 취미가 모두 다른 우리가 수요일, 목요일 오후가 되면 반드시 하는 행동이 있었다.     

평소보다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5시가 되면 배달을 시킨다. 음식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


개발자의 리드 하에 새로운 보드게임을 펼쳐 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게임이 시작된다. 각자의 손에는 간단한 음식과 카드가 들려있다. 

하루종일 꽉 막혀있던 머리가 게임을 하면 신기하게 팡하고 트이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가볍게 시작했던 게임이 모두의 진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는 팀워크를 더욱더 돈독하게 만들어줬다.      


게임 독학에 대한 참고 서적을 많이 읽다 보면 '게임 역기획서'를 많이 써보라고 조언해 준다. 

실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게임들은 탄탄하고 배울 점이 정말 많고 역기획서를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 정작 나를 게임기획자로 성장시킨 건, 진심으로 좋아하는 최애 게임들이었다. 


겜알못이었던 내가 직접 게임 세계관, 룰, 시스템 등등에 대해서 뒤적거리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지식이 내 안에 쌓여가면서 제작에도 적용가능한 것들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에 몰입하는 1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들이 내 안에 커다란 영감을 짙게 남아 나를 이끌어준 것이 아닐까? 그냥 일로 만드는 게임이 아닌,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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