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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Jan 19. 2024

03. 두근두근, 첫 테스트(2)

겜알못이 어쩌다가 게임기획자가 되었을까? 

 

숲 속의 작은 도서관을 찾아가다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지난 테스트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테스트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마침 대표가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 숲 속의 작은 도서관의 관장님이셨기에 장소와 아이들 섭외까지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는데, 처음 방문하는 공간이기에 걱정반 호기심반으로 시작했다.
도서관에 로망이 가득했기에 '숲 속 도서관'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비밀 아지트를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은  등산로를 따라 들어가야 있어 일부러 찾아오지 않고서는 쉽게 알아볼 수 없을 듯했다.


'치이이익(?) 안녕하세요.'  

10평 남짓한 내부는 차를 끓이는 주전자 열기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시는 길 추울까 봐, 미리 차를 끓여놓았어요.]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관장님의 미소와 그녀가 건넨 차 덕분에 긴장된 마음이 단번에 녹아버렸다. 아기자기한 건물 내부는 목재로 되어있었는데 도서관이라기보단 작은 책방 같은 분위기에 가깝다. 


우리가 진행할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한둘씩 들어오더니 어느새 작은 도서관이 가득 찼다. 신발을 벗고 앉거나 누워서 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책을 두고 삼삼오오 모여 함께 보고 장난치는 모습이 너무 편안하고 아늑해 보였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도서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은 표지부터 사용감이 남달라 누가 봐도 '가장 인기 있는 책'이구나 싶다. 공간과 그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 걸까?  


첫 방문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스토리 구성과 진행에 대한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엔 가득 넘쳤다. 

아이들의 언어를 모르겠어!!

스토리구상과 초기 기획안까지는 진도가 쑥쑥 나갔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존재했으니... 

딱딱하고 묘하게 사무적인 말투로는 아무리 해도 편안한 구어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걸듯이 해야 하는데 이건 보고 다시 봐도 명령체 같다. 퀘스트가 나오기 전에 내 글을 이해하는 것부터 난관일 것 같은데... 이대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없다! 


그 길로 사무실을 나와 초등학교 고학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도서들을 주섬주섬 사 와서 문체, 단어 등을 유심히 살피며 열심히 공부했다. 육성으로 내뱉기는 조금 창피할 수도 있을 법한 표현들도 섞어 써가며 스토리, 지시문 등을 썼다. 팀원들에게 4차례 넘게 다양한 피드백을 들은 후에야 겨우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모든 글 작업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새삼 아이들 책 작업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십 분의 일 정도를 이해한 계기가 된 것 같다. 후우 


추위요? 아이들은 신경도 안 쓸걸요 

이미 한 차례 강추위를 겪었던 전적 덕분인지 미션 코스를 짤 때부터 추위부터 걱정되었다. 

특히나 면역이 약한 아이들이 게임을 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 나지 않을까? 종일 전전긍긍하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관장님은 겉옷을 던져버리고 놀이터로 나간 자신의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추위는 우리 같은 어른들에게만 문제죠. 제 아들 보이시죠?]  

도서관 바로 앞엔 작은 놀이터가 있는데 아이들은 책 읽다가 지겨워지면 놀이터로 뛰어나가 놀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고 하셨다. 미끄럼틀을 정신없이 타고 있는 아이들 곁으로 걸어 나가보았다.  


흙이 가득 묻은 바지도 땅에 끌리는 잠바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얼굴이 빨개진 채로 뛰어놀던 어릴 적 내 모습도 그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한 없이 해맑고 무한한 에너지를 뿜뿜 하던 과거를 소집해 거꾸로 뒤집어도 보고 각종 놀이기구 구석구석 기어 다니기를 한참, 나도 모르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코스는 도서관, 놀이터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역동적, 상호작용, 발견, 팀워크 

어른들을 위한 경복궁 버전은 참가자들의 개인전, 경쟁과 같은 구도 었던 반면 이번 버전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에 가까운 시간이길 바라며 아이들 간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서관 내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는데, 아이들에게 게임 테스트날이 즐거웠던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살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준비하는 내가 훨씬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실은 중학생 때 도서부였던 내게 도서관 책장 속 무궁무진한 책들은 그냥 바라만 보고만 있어도 신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책들을 활용해서 마음껏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몇 가지 게임에 쓰일 책들을 선정하고 나자 조금 더 욕심이 생겼다. 관장님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도서관 내 작은 서랍들 속에 쪽지들을 숨겨두기로 했다.  


[관장님, 게임 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괜찮아요?] 

[뭐 어때요? 그러려고 하는 거죠.]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 

대망의 테스트 날, 미리 참가 신청을 받은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도서관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작은 도서관이 가득 차자, 진행자 겸 기획자인 내가 아이들에게 게임 룰과 게임 세계관(배경)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고학년을 모집했지만 함께 하기를 원하는 1~2학년 동생들을 포함시키자 얼떨결에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미션지와 펜을 집어든 작은 손들은 시작과 동시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도서관 곳곳에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도서관이 열기로 가득 찼다.  

재밌는 건 카카오로 힌트를 안내해 주던 어른들의 테스트와 달리 진행자들(팀원)에게 직접 힌트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기에 언제든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스스로 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선생님, 저리 가세요~!! 저희가 할 수 있어요.] 머리를 맞대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끄적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무엇보다 퀘스트 하나하나를 깰 때마다 떠나가라 기뻐하던 그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직 지문도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1~2학년 동생들은 그저 그들은 누나, 언니, 오빠, 형들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이터와 도서관을 달리며 퀘스트를 풀어나가는 친구들 덕분에 우리도 테스트임을 잊을 정도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1차 테스트(어른 집단) 때는 게임이 다 끝난 후 심도 있는 설문을 진행해야 했다면, 아이들은 그저 게임을 즐기는 1시간 동안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간단한 설문지만으로 종료되었다.  

 

이날의 만족스러운 아이들의 반응 때문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기울기도 했지만 시장 접근성을 고려해 우린 <20~30대 성인 대상으로 하는 게임>으로 타깃을 확정하게 된다.  

다 지나고 나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어떤  타겟을 선택했더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과정은 다 똑같이 힘들었을 것 같다.    


과연 과거의 우리가 한 선택이 좋은 선택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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