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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본가의 밤, 따뜻하게 켜진 전기장판처럼

by 테일러

서울에서 지내다 오랜만에 부산 본가에 내려가면,

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쉬어간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부엌에서는 엄마가 만들어두신 저녁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반찬이 꽉 찬 냉장고,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무침이 유난히 많은 날은 괜히 마음까지 포근해진다.


밥을 먹고 나면,

아빠는 늘 그렇듯 내 방 문을 슬쩍 열고

손흔들며 한 마디 남긴다.


"굿나잇~"


그 짧은 한마디에 어릴 적 기억이 겹쳐진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 안할거라며 떼쓰던 날에도,

시험을 망치고 울던 밤에도,

기침이 멈추지 않던 새벽에도,

아빠는 늘 같은 말투로 굿나잇을 건넸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인사가 얼마나 다정한 보호막이었는지.


늦은 저녁에 외출하고 돌아오면,

내 침대엔 전기장판이 미리 켜져 있다.


엄마가 말 없이 따뜻하게 해놓으신 그 온기를 보면,

“너의 하루가 편하길 바란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말보다 온도가 먼저 다가오는 사랑.

그건 우리 집의 방식이었다.


예전엔 왜 우리 집은 더 넉넉하지 않을까,

왜 남들처럼 멋진 직업을 가진 부모님이 아닐까,

조용히 불만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

매일을 버티며 나를 지켜낸 그 사랑이,

내가 지금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든 바탕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 조용한 밤,

고요한 서울 원룸 침대 위에 누워 가만히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굿나잇이라는 인사를 누군가에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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