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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 안에서 잃어버린 것들

우리의 서로다른 언어 감수성이 사랑의 온도를 결정지었다

by 테일러

어느 날이었다.


남자친구였던 오빠에게 급하게 요리를 하느라 새 오일 병을 열어야 했는데, 손목이 좋지 않아 그에게 부탁을 했다.


“병뚜껑 좀 따봐.”

달궈진 팬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나는 병을 건넸고, 그는 그 병을 받지도 않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말투가 그게 뭐야?”

그 순간, 내 마음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멈춰 서버렸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조금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살아왔다. 무례할 의도는 없었다. 다만, 나는 예쁘게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그런 나의 말투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 관계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날의 말투보다 더 아팠던 건,

내가 부탁을 건넨 마음이 무시당한 순간이었다.


도움을 구한 내 마음보다 '예쁘지 않은 말투'가 먼저 지적받는 경험.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보지 않은 채,
표현 방식 하나로 내 진심이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예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차갑게 대답을 들을 만큼,
상처받을 만큼 나쁜 마음은 아니었다.


사랑은 때때로, 나를 변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고쳐야 할 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더 작게 만들곤 했다.
말투 하나, 감정 표현 하나, 나의 방식들은 조심스럽게 수정되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갔다.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를 계속해서 작게 만들어야만 유지되는 사랑은 결국 나를 잃게 만든다는 걸.


나는 배웠다.


예쁘지 않아도 진심을 담아 말했던 내 마음은
누구에게도 깎여나갈 이유가 없다는 걸.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를 지켜낼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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