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희원 Aug 25. 2023

오래된 카세트와 노홍철의 외침

하고 싶은거 하세요 하고싶은 거

버리지 못한 물건은 많은데, 추억이 담긴 오래된 물건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특별하다 느끼지 못할만큼 자연스럽게 오래 자리한 물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카세트가 그런 물건이다. 카세트는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 세상에서 쓸모를 의심받기 충분하다. 시디.. 테이프.. 라디오..




  고급 음향까지, 온갖 기능을 하나의 장치에 모았다는 점에서 우리집 카세트는 그때 그시절 최신식 기기였다. 우리집 사람들은 최신 장비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 기기는 어쩐지 아빠의 선택을 받아 집으로 왔다. 거실에서 내방으로, 언젠가부턴 자리를 꿰차고 사춘기인 나를 달래주는 역을 맡았다. 난 쓸쓸한(?) 저녁이면 이 친구에 CD를 넣어 노랠 들었고, 공짜 MP4가 생긴 후로는 CD대신 라디오를 틀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와 이 친구를 켜면 태연의 <친한친구>라는 채널이 흘러나왔다. 중2 감성에 젖어 나즈막히 듣던 라디오의 DJ가 노홍철로 바뀌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클로징멘트로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하고 싶은 거어!" 라며 소리쳤다. 그 특유의 음색으로,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매일 저녁을 그랬다.



 '하고 싶은 거' 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그 외침이 좋아서 자꾸만 <친한친구>를 들었다. 외침을 끝으로 라디오가 끝나면 나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가만히 멍을 때렸던 것 같다. 여하튼 그 외침은 십여년이 지나 나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라고 소리쳐 줄 목소리가 몇이나 될까? 이런 연유로 하고 싶은게 생길 틈엔 노홍철님의 목소리를 상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자주 구분 짓고 화두에 올린다. 결단을 내리기 어렵거나 스스로에게 어떤 말도 할 자신이 없을 때면 그의 목소리를 꺼내어 듣는다. 노홍철님은 한 청취자의 머릿 속에 작은 씨앗을 심었고, 이건 절대 말라버릴 일이 없다. 나의 오래된 카세트엔 현재 진행형인 추억이 있다.



 이 카세트는 대청소 때 버려질 뻔 한 위기를 이겨내고 주말농장으로 왔다. 볼륨이 고장나서 버튼을 누르면 제 멋대로 소리가 커졌다 작아진다. CD도, 테이프도 잘 듣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다이소에서 블루투스 부품을 사와서 연결했더니 블루투스가 된다. 신기방기. 이젠 이 친구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틀 수 있다. 오래된 물건도 재생시켜주는 좋은 세상이다!






+

머릿 속에 노홍철님 말고 엄마의 목소리도 있다.

엄만 어느 날 "네 쪼대로 살아라.”라고 하셨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오스크 앞에서 당당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