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쪼록 서른
세상이 장난을 친다.
2023년 6월이란다.
나는 아직 2021년 같은데, 2021년에는 2018년쯤 같았을테니 지금은 2018년같은 2021년 같은 2023년.
6월 28일이면 한국에서도 전면적으로 만 나이를 생활화한다. 전국민이 한 살내지 두 살 어려진다. 어려지기 위해서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나라라니!
만 나이가 생활화된다고 육체가 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플라시보 뭐시기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나는 기분이 좋다. 20대에 한 두살 차이는 크니까 더 젊어진 기분을 누릴 심산이다. (우리 동생이 이 글 봤으면 백퍼 젊꼰이라고 함)
사람들끼리 만나서 나이로 위계를 따지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게다가 해외보다 한 살 많게 친다며, 아 거 미국처럼 헤이 스미스 하면서 힙해질 수 없냐며.. 그래놓고 어려진다고 좋아하다니 영락없이 나이 집착을 벗어나지 못한 k국인이 나다.
진짜로 회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좋을까. 만나이 도입한다고 바뀌는 것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말고 더 있을까. 기껏 써먹을데라곤 “2n 빼기 2살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 순간 뿐이다. 마치 나이마다 주어지는 단계에서 자유로워지기라도 한 듯이 당당하게!
지금보다 우리가 방황하고 고군분투할 때 친구 H와 동네 그네에 앉아 그런 대화를 했다. 왜 20대는 10년밖에 없는거냐고, 대학도 취준도 취업도 결혼도 해야하는데 10년은 너무 짧지 않냐고, 정지버튼을 눌러놓고 싶다고. 우린 29살이 되면 그 다음해부턴 29다시 1, 그 다음엔 29다시 2살이 되자며 낄낄댔다.
한숨 섞인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 줄이야. 기뻐할 시간은 1년정도 벌었고, 그만큼 지나면 다시 지금의 나이가 된다. 그리고 2년이 더 지나면 서른. 이 멋진 숫자가 두려운 건 서른의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어서고..
바라는 것과 달리 아직 미래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상상을 현실화하고 싶은데 상상부터 삐걱거린다. 하는 상상마다 어딘가 내게 맞지 옷을 입은 거 같고 통 내가 뭘하며 살면 적절할지, 무슨 일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할지? 뭐에 쏟아부을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 글을 6월 초에 썼는데 최근에 어렴풋한 꿈이 생겼다. 상상한 미래의 내 모습이 꽤나 기분 좋았다. 근데 그 꿈에 대해 알아보면서, 역시 찾을 수 있는 건 대단한 케이스들이었고, 빛나는 것들에 비하면 내 꿈이 너무나 소박했단 사실에 초라해짐을 느꼈다. 이놈의 뇌구조는 누가 설계한걸까.
그래도 모호하게 품고있던 세계관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꺼내졌다는 점은 소득이다. 둥그스러븐 소망에 조금의 각이 자라났달까? 각의 주변을 다듬고 다듬으면 만들고 만들고 싶은 어떤 모양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