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예술로 빛난다>조원재
한 번은 소형 평형의 집을 보러간 적이 있다.
아파트 현관에서 부동산 중개소장님을 만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소장님은 말했다. "이 집이 수리를 안해서 많이 낡았어요. 그 점은 감안하고 보세요." 그러자 엘레베이터를 함께 타고있던 주민분이 슬쩍 쳐다본다. 그러더니 “혹시 30ㅇ호 가세요?” 하고 묻는 게 아닌가.
옆에서 소장님이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다. 그 주민은 곧 보러 갈 집의 주인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소장님과 서로 못알아 본 것이다. 그렇게 우리 셋은 다소 머쓱한 공기를 안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소장님의 말처럼 집에는 세월의 흔적이 녹아있었다. 그도 그럴게 지어진지 30년도 더 된 집이었으니. 하지만 나이로 따지면 우리 본가도 만만치 않았다.
그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집 전체를 손수 칠한 올리브색 벽과 가장자리마다의 레몬색 몰딩이었다. 상상이 가는가? 집수리 대신 고심하며 페인트 색을 골랐을 거주인, 그 기준이 화이트톤 같은 무난함 아닌 뭔가였던 것 같은 색감, 또 현실적으론 집을 세 놓을려면 손볼 데가 많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방문객으로서 얼른 운을 띄워야할 것 같았다.
"집이.. 따뜻하네요."
그 말에 주인분은 긴장이 누그러진 듯 얘기를 꺼내신다. 아내와 반평생 여기서 살았으며 두 자녀를 이 집에서 대학까지 보냈다는 얘기, 그리고 사적인 썰까지(?). 어느새 소장님과 주인분은 근황 토크를 나누고 있었고, 집은 한 눈에 들어오는 크기인지라 나는 가만히 선 채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색깔 다음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방 한 켠 떡하니 차지한 갈색 피아노다. 피아노 위에 올려진 필름카메라, 책장 없이 탑처럼 벽에 기댄 책들과 기타. 둘러볼수록 이상하게 집 상태보단 그런 것들이 내 안의 무언가를 두드렸다. 집에도 사는 사람의 기운이 깃든다는 소장님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타인의 살림을 너무 뚫어져라 봤나 싶다)
기타에 시선이 머무르자 부연 설명이 날아왔다. 우리 아내하고 자식들이 어릴 때 기타치고 노래하면서 잘 놀았다는 주인분의 말, 그 말에 나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사람이 살면서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엄마는 언젠가 그런 말을 하셨다. 그 뒤에 따라올 문장은 예술을 늘 곁에두는 엄마의 삶으로 짐작이 가능해서 흘려들으며 그 말뜻을 이해했다 여기고 살았다. 하지만 레몬색 집에 방문한 그날에서야 나는 엄마의 말을 일부분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 덕분에 그때의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찾았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 그 날 내가 본 건 집이 아니라 어떤 삶이었다. 지극히 일부였을테지만 적어도 집 전체의 벽과 피아노가 자리한 크기의 비중만큼, 그 삶에서 빛나는 예술을 느낀 것이다.
시간을 겪어 얼기설기 떨어지는 나무 문짝과 그 위를 포갠 레몬색 페인트. 그 페인트를 두고서 잉여인지 쓸모인지 줄곧 고민해왔건만, 어쩌면 질문부터가 틀렸을 지도 모른다. 문짝이 있어서 페인트가 예술이고, 페인트가 있어서 문짝 전체가 하나의 삶이자 하나의 예술이 된다.
이제는 누군가 삶에서 예술이 꼭 필요하냐고 묻거나 우선순위를 묻는다면, 정답은 모르겠지만 삶은 예술로 빛나고, 예술은 삶이라 빛난다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책 <삶은 예술로 빛난다>
저자 조원재
전작 <방구석 미술관 1, 2>
출판사 다산북스
출판일 2023. 8. 29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