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ives Matter의 이유 <2>
흑인 사회운동가 오드리 로드와 제자백가 철학자 장자를 중심으로
*대학에서 들은 "동양으로 서양읽기" 과목의 기말 레포트입니다. 서양 사상 또는 서구적 현상을 장자적 관점에서 독해하는 일이 목적이라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접근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글이 장자 사상 전체를 다루지는 못했다는 점도 미리 밝혀둡니다. 경어로 작성되었습니다.
ALM의 역설
BLM 대 ALM이라는 간명한 구도로 나타나긴 했지만, 이러한 대립이 아주 새롭지만은 않습니다. 흑인 사회운동가 오드리 로드는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흑인 레즈비언으로서 인권운동을 하다 겪는 여러 경험을 소개합니다.
그는 백인 남성은 물론, 백인 여성과도, 흑인 남성과도 충돌합니다. 로드는 백인 여성과도 흑인 남성과도 다른, 흑인 여성(그리고 레즈비언)만이 겪는 차별을 인식합니다. 즉, 차별은 모든 약자에게 동일하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서 있는 복잡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층적 양상을 띤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고, 그에 따라 경험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드는 그러한 차이가 약자들의 연대를 가로막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All Lives Matter인데, All Lives로 결집하기 위해 약자 중 일부가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드가 몸담은 연대는 차이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보다 약자인 흑인 여성을 외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흑인 여성이 흑인 인권 또는 여성 인권이라는 보다 중요한 대의를 놓치기 때문도 아닙니다. 차이란 원래 필연적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들의 연대를 갈라놓는 것은 경험한 폭력의 차이가 아니라, 폭력 그 자체입니다. 폭력적인 세계 속에서는 부드러운 말과 행동도 누군가의 마음에는 날카로운 비수로 꽂히게 마련이며, 따뜻한 연대의 관계도 차가운 파편으로 부스러지게 마련입니다.
흑인으로부터 차별받은 동양인이 흑인의 인권 운동에 동참할 수 없다면, 그것은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백인과 흑인과 황인 사이에 교묘한 위계관계를 조성하는 사회구조 때문인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은 한
로드는 차이가 연대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정확히 지금의 사회구조가 원하는 바입니다. 자신이 받는 차별을 내면화하고 위에서 아래로 폭력을 행사하게 만듦으로써 사회는 지금의 위계관계를 지속시킵니다.
YLM에 입각한 반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상황, 또는 동양인이 흑인보다 낮은 지위에 처하는 상황이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흑인과 동양인의 연대를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동양인이 흑인보다 차별받는 상황은 흑인 인권 신장을 반대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백인의 기득권이 지속되게 할 뿐입니다.
로드는 억압에 위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흑인 여성/백인 여성/흑인 남성이 겪는 차별과 억압은 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차이는 약자의 연대를 해체시키는 대신에 연대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가능성을 가집니다. 다양한 억압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종주의(그리고 가부장제)의 유해성을 일깨우고, 일상에서 나타나는 억압의 복잡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흑인과 동양인의 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인만이 겪어 온 차별 경험은 흑인과의 연대하여 더욱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은 한,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지 않은 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동양인의 자유는 흑인의 자유로써 이루어집니다. 동시에, 흑인의 자유는 동양인의 자유로써만 가능합니다. 동양인은 흑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한편, 정확히 흑인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자유란 그렇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BLM에 대항하는 ALM의 동양적 맥락을 살펴보았습니다. 한편 ALM에는 서구적 맥락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흑인의 인권 신장이 백인이 역차별당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White Lives Matter 반론입니다. BLM 시위 과정에서 백인을 대상으로 한 위법한 폭력행위가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로드는 이에 관해서는 서구 백인 남성의 태평한 투정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로드는 오히려 혁명가의 자세를 취합니다. 로드에게 흑인/여성/성소수자의 삶을 지키는 일은 곧 서구중심적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 백인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순응하는 일은 마치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BLM 운동은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백인 경찰관에게 흑인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WLM을 주장하는 이들은 흑인의 시위에만 적법절차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백인은 너무나 당연히 어겨왔던 그러면서 눈감아왔던 규율은, 흑인을 향해서만 ‘정의’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폭력이자 불평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주인의 도구를 내려놓자고, 그럼으로써 서구 백인 남성이 만들어놓은 견고하고도 육중한 집에 흠집을 내자고, 로드는 외칩니다.
우리의 이야기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40여 년 전의 책이지만,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그리고 BLM 운동을 독해하는 데에 굉장히 유효합니다. 로드는 사회적 소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그 차이를 극복하는 연대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저열한 기득권의 문제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40년 전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흑인 여성운동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사건과 용어만을 달리하며 그대로 반복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흑인의 이야기입니다. 흑인의 자유를 위해서는 동양인의 자유가 필요하며, 흑인과 동양인의 차이는 변화에 대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BLM과 뜻을 같이하는 YLM의 맥락에서,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동양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선진적’ 서구사회에서 학습했고, 그 과정에서 서구적 관점을 내면화했기 때문입니다. 동양에 대한 서구의 우월주의를 비판할 때 미국의 문학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빌려오고,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독일 사회학자 칼 마르크스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차별받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도 차별하는 쪽의 언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손에 쥔 것이라고는 ‘주인의 도구’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BLM 운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주장도 이해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 서구 기득권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할 뿐입니다. 우리가 흑인과 연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히 서구 기득권의 관점도 아니고, 전적으로 우리를 흑인과 동일시하는 관점도 아닙니다.
로드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이야기와 우리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간을 많이 거슬러 올라가 장자를 호출하고자 합니다.(나아가 장자보다도 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 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원서출판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