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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제니 Aug 24. 2019

초심을 잃는 곳

주관적인 브랜드 이야기 

2018년도 9월쯤에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입맛을 사로잡을, '밀크계의 스타벅스', The Alley (더 앨리)가 한국에 착륙하였다.


유레카!

나는 운이 좋게도 나의 아지트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오픈한 더 앨리를 일찍 발견했다. 그때는 더 앨리가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은 때였지만, 멋스러운 사슴 로고가 날 유혹했다. 내가 처음 맛본 브라운 슈가 디리어 오카는 눈이 휘둥그레 지는 혁신의 맛이었다. 향이 깊은 밀크티에 조화로운 달콤함을 더해주는 더 앨리의 세상 쫄깃한 펄은 내가 14년의 해외생활을 하면서 맛본 펄 중에 단연 최고였다.

 

2018년 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필수적으로 일주일에 기본 1잔은 마셔줬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몰려드는 더 앨리를 보면서 '역시, 잘 될 곳은 잘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주문하면 바로 밀크티를 받을 수 있는 시절은 지났고, 시간 때와 상관없이 스토어 주변을 따라 뱀처럼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었다.


음? 이 맛이 아닌데?

그런데 기분 탓인가, 어느 시점부터 더 앨리의 밀크티는 더 이상을 내게 감동을 주지 않았다.


2018년도에 마신 더 앨리는 얼음이 녹아도 끝까지 진한 달콤함과 고소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풍부한 향과 맛은 온데간데없었고, 그나마 쫄깃한 펄이 공허함을 달래주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기대치 때문인가, 내가 처음에 맛봤던 더 앨리와 소소한 디테일에서부터 뭔가 달라지자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예전 같은 사랑과 관심을 안 준다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난 옛 맛을 추억하며 더 앨리에게 몇 번의 만회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어딜 가도 초창기의 진한 밀크티 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정말로 실망했던 구매는 6월에 신세계백화점에서 주문한 브라운 슈가 디리어 오카였다. 그냥 우유였다.


첫 두 모금 까지정도만 밀크티라고 해줄 수 있었고, 그다음은 그냥 정말 맛도, 색깔도 우유였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라고 해도 우유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내 친구도 마찬가지로 우린 우유를 5,000원 넘는 돈을 지불하고 마시는 'Ho9' 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내가 우유를 맛보게 된 날은 극 소수의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예민한 사람들밖에 변화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졌던 브랜드가 나에게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섭섭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해는 해, 근데...

회사는 돈을 벌어야 산다. 돈을 벌어야 회사가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 나의 추측일 뿐이기는 하지만, 더 앨리도 혹시 고객 수가 급증하자 단가를 낮추기 위해 재료비를 아끼는 것이 아닐까... (가든 멜로우 티에 올려주던 앙증맞은 풀? 도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 맛의 변화가 의도적이든, 지점마다의 운영방식 차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든, 고객의 입장에서 ‘팬십’ (fan-ship)을 잃게 하는 효과는 마찬가지이다.


수천 개의 브랜드가 떠올랐다 소리없이 사라짐을 반복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브랜드에게 충성을 다하는 ‘팬층’을 확보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팬들은 재구매율이 원타이머 (one-timer) 보다 5배나 높고, 새로운 고객에게 입소문을 퍼트려줄 확률은 4배이고, 용서할 가능성은 5배이다. 하지만 팬들이 보내주는 무한 사랑의 대상은 어느 정도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이지, 그 사랑의 대상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일관성을 잃게 된다면 그 사랑도 식어갈 수밖에 없다.


더 앨리는 나에게 제안한 약속, 즉 깊고 풍부한 브라운 슈가의 매력 (그 대신 우유의 매력(?)을 선사했다)의 약속을 계속 지켜내지 못했고, 난 차차 신뢰를 잃게 되었다. 나만 이상하고 까탈 맞은 고객이 아닐까 싶어서 우리 엄마, 그리고 여러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다.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두 맛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이 더 맛있었다고. 고객은 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낄 수 있는 변화에 나름 충동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반응한다. 이미 한 번쯤은 먹어본 인싸템은 서서히 잊히게 될 것이고, 더 가성비 좋고, 좋은 경험을 선사하는 경쟁상품으로 갈아타겠지.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엄청 고민했었다. 혹시나 섣불리 근본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SNS에 달린 댓글과 블로그 후기도 참고했다. 물론 맛있다 하는 고객도 있고 재방문 의사를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댓글도 찾기 어렵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혹평을 하신 분들은 맛을 '흰 우유에 흑설탕 얹은 맛'이라고 평가하셨다. 난 이 사태를 비판하기보다는 그저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회사 전략이야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돈이 잘 벌리는 운영 방식을 찾았다면 잘된 게 아닌가. 하지만 더 많은 고객에게 꾸준히 좋은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막대한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난 더 이상 2018년도에 마셨던 진하고 풍미 있는 밀크티는 마실 수 없고, 이제 또 열심히 대체 브랜드를 찾아 나서야 한다.


사실 더 앨리에서만 내가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면 이 글을 올리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샵이나 브랜드가 초심을 잃고, 저렴한 재료를 써서 내거나 서비스 질을 낮추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경험해서 더 이상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난 사업이란 걸 해 본 적도 없고 마케팅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비스나 상품은 최종적으로 고객을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이익창출을 벗어나서 나 같은 고객의 목소리에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객이 느낌점은 곧 고객의 현실이고, 그 현실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한번 떠난 손님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객의 시점에서 상품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시간과 관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상품에 대한 자부심과 진정성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가는 브랜드의 창업자나 대표를 보면 항상 자기의 브랜드를 사랑하고, 확고한 가치관을 표현한다. 자신이 시작한 브랜드 철학을 아끼고 사랑해야 기존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걸맞은 결과물을 고집할 수 있을 테고, 그 확고한 아이덴티티에서 고객들은 자기 자신의 일부를 찾아 영원한 친구로 남아줄 거라 믿는다.


사람이든, 관계이든, 사업이든, 사랑하고, 아껴주고,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오래가는 법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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