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셀린 Nov 16. 2019

굿 널스

1702

듀티를 채우고 며칠 쉬고 월급을 받고 뭔가 사고 보니(다음 달 카드 명세서를 보며 대체 이걸 왜 샀을까 하는 자괴감을 반복하지만) 어느새 몇 년이 지났더라. 학자금 대출은 겨우 갚아냈다지만 약간의 저축과 반비례로 커진 씀씀이는 어찌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 이것은 내가 카드값을 메우려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함으로써 생활을 이어가는 돈이 나오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왕왕 있기도 하고. 


결국 드는 생각은 나는 병원 소속의 직장인인가 혹은 어딘가 심각하게 아픈 환자들 옆에서 성심껏 케어를 하는 간호사인가 하는 정체성과 관련된 깊지 않은 갈등. 그래, 솔직히 신규 때는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편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약간의 고민을 한 적이 있긴 있었더랬지. 일을 하면 할수록 간호만으로는 분명히 어떠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고. 다만 환자가 무너지는 그 와중에 어떤 부정적인 신호를 조금이라도 빨리 캐치하게 되었고, 힘겹게 가래로 막을 수도 있는 일을 호미로 방어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덜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 거친 자존심을 위한 조금의 위로가 될까. 한 발 물러보자면 그 절약된 시간만큼 환자가 조금 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잘 훈련된 중환자 간호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음이라. 직업적인 한계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보려 한 것일 수도. 어쩌면 나는 알게 모르게 좋은 간호사가 되길 고민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 잔망스러운 명제가 과연 진심인 것인지 스스로 한 번 더 고민해볼 정도로 타성에 젖어있을 것일 테니. 분명히. 지금 나는. 

고로 십분지 일은 거짓말일 수도 있을 터. 


잘 정돈된 오더지에 꼼꼼하게 기록된 시트 화면, 딱 떨어지게 카운트된 항생제와 그 밖의 무시무시한 약물들. 환자의 완벽한 포지션과 갓 세탁한 듯한 뽀얀 환의, 그보다 더 말끔한 엉덩이.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홑이불과 세팅은 물론 알람 볼륨마저 적확한 범위의 모니터링, 치밀하게 배액 되고 있는 각종 관들. 환자는 세상모르게 잠에 취해 있고 바이탈은 몹시 안정적이며 날카로운 알람 소리 없이 적막한 병동은 흡사 심해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잠수함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 학부생 때 마치 세뇌처럼 '간호는 예술이다'라고 교수들이 외쳤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일컫는 이유일지도. 그렇다고 해서 환자가 마법처럼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의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항상 완벽을 좇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힌 우리들이 그렇지 않은 조건보다 한 번이라도 더 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연유를 부정할 수 없을 테지. 


잠시 언급됐던 그 강박, 그것은 악덕임에 분명할 것이야.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을진대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백조와도 같이, 우리는 항상 바벨탑을 쌓아가곤 해서 정신을 차려 보면 스스로 옭아매고 서로를 목 조르고 있더라. 악마처럼 불을 뿜는 나와 하얗게 타버린 채 고개를 숙인 신규, 그리고 그 간극을 노려보는 차지 간호사와 귀를 쫑긋 세우고 모든 상황을 엿듣는 다른 액팅 간호사가 있곤 했어. 아아, 지금 이 바닥에 나쁜 인간은 나 하나인 건가. 아니야, 모두가 나빠. 오더를 헷갈리게 내어 놓은 의사부터 그것을 제대로 소화 못 한 신규, 그 뒤를 봐주지 않은 차지, 열불을 토하는 나, 방관하는 다른 이들, 심지어 환자에게 대체 이토록 왜 아픈 거냐고 묻고 싶기까지 해. 과연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우리는. 


나는 포지션을 좀 잘해, 쟤는 인계를 참 잘 줘, 그 애는 아이브이 라인을 꽤 잘 잡아, 얘는 드레싱 하나는 끝내주게 붙여, 걔는 우리 병동의 브레인이야, 엄청 똑똑해. 느지막이 신환 받고 칼퇴했던 손 빠른 간호사는 누구더라? 참, 어제 보호자한테 칭찬받은 간호사는 또 누구였어? 간호사로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며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겹치고 또 얹힐 때 비로소 좋은 간호가 스며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해. 간호는 연금술이 아니라는 것을, 면허증을 발급받았다고 하루아침에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들 있지. 간호사는 쇠뭉치를 갈고 갈아 예리한 바늘을 만들어내듯 치열하게 타오른 몇 년 동안 병원 색깔에 물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짜. 


지금도 이 시간엔 다른 시선의 간호사들이 인계를 세 번씩 주고받으며 오더지와 함께 환자의 역사가 쌓여가고 있지. 벽돌처럼 공고해져 가는 시트지와 안정화되어 가는 환자들도 함께일 것이니. 우리가 갖고 있는 강박이 악덕이라면 서로 다르게 갖고 있는 간호에 대한 생각은 미덕일지도.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너는 볼 수 있어. 네가 놓치는 것을 나는 찾아내곤 하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간호사 일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는. 


작가의 이전글 내가 뱃살이 어딨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