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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어느 날 갑자기

1709

날이 하루아침에 차가워져서 욕실 창문을 단단히 닫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시작했다. 새로 바꾼 생강향 바디 워시가 온몸을 조금 더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 놓고 씻는 버릇이 있어 그날도 노래에 맞춰 콧소리를 흥얼대고 있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타일이 메아리를 탕탕 일어내고 있었다. 샤워를 마쳐갈 무렵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연우의 ‘이별 택시’였다. 그때였다. 


퐁당. 


갑자기 울리는 낯선 소리에 머리를 헹구다 말고 뛰쳐나왔다. 변기의 파란 물속에 스마트폰이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수건 더미 위에 올려 두었던 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끄러져 변기로 골인한 것이었다. 그 안에서 김연우의 목소리는 천천히 그리고 먹먹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이이이으이으으으으’


주저할 틈도 없이 손을 쑥 집어넣어 꺼내었다. 일단 전원을 꺼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물에 젖은 폰은 손가락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수건으로 쓱쓱 닦아내고 재차 시도하였으나 마찬가지였다. 노랫소리가 울리던 욕실은 잿빛 탄식으로 가득 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업 시스템이 자동으로 연결되어 있어 소중한 기록들은 문제가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라 당혹스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완전히 건조해야 한다고들 했다. 수건과 드라이기로 최대한 말렸다. 그리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약간은 얼이 빠지고 화난 상태로 이런저런 준비를 마쳤다. 왜 폰이 미끄러진 것일까. 3년째 늘 두던 곳이었는데. 고쳐야 할까. 새로 장만해야 할까. 두 달 동안 연속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여윳돈이 없는데 어쩌지. 무엇보다 당장 좋아하는 모바일 게임도, 음악도 없이 출근을 하는 것부터 고역이었다. 심지어 시계도 차지 않고 다닌 지 몇 년 째라 시간도 알 수 없었다. 결국 혼자 급하게 움직이다가 삼십 분 일찍 출근하게 되었다. 


그 환자는 내 어머니와 나이가 같았다.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받다가 반짝, 그야말로 반짝 좋아져서 한 달 전엔 등산도 다닐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다 대부분의 중환자실 환자의 코스가 그렇듯 인투베이션을 하고 2주가 넘게 입원 중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진정제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다들 의식이 온전히 돌아올까 노심초사 불안했었는데 몇 가지 약을 끊자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휙 돌아왔다. 문제는 운이 좋지 않은 분이었다는 것. 혈전으로 추측되는 것이 우측 하지의 혈관을 막은 모양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무릎 아래로 까맣게 변하면서 마치 노점상의 건어물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환자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목 한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그곳으로 숨을 쉬고 있었고 2주 동안 부동자세였기에 사지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아 움직임이 문어처럼 더디기만 했다. 무엇보다 한쪽 다리가 썩어가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세상 어느 누가 지금의 상황을 ‘아, 그렇구나. 폐암이었으니 하루아침에 이럴 수 있어. 그렇지. 세상 일이 그렇지, 뭐’하며 헛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나였다면 대여섯 번은 탈관 했을 것이다. 온몸에 억제대를 두르고 의료진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간호사들이 가장 대하기 싫은 환자 1순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환자는 침착했다. 아픈 다리를 만질 때를 제외하고는 아픈 곳도 없다고 했다. 덥긴 한데 아이스 팩 같은 것은 없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마에 젖은 수건을 얹어두었으면 했고, 배가 꾸르륵꾸르륵하다고도 했다. 이 모든 것을 고갯짓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내었다. 표면적으론 무척 점잖은 환자였다. 직업적으로부터가 아닌 인간적으로 잘해 드리고픈 타입이었다. 다만 언뜻 비치는 얼굴의 그늘이 짐짓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어머니가 겹쳐서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역시 그 환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7일 만에 대변도 시원하게 보았고 비록 땀을 흘리며 힘들어 하긴 했지만 인공호흡기 이탈 연습도 나름대로 잘 되었다. 어쨌든 나아지고 있었다. 어제보다 시큰둥한 기운이었지만 그래도 잘 응해주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다 정신 차려보니 지금처럼 불편한 상태로 누워 있어서 기분이 안 좋으시겠다고 에둘렀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접착제로 고정한 듯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십 여 초동안 너무나 나를 빤히 바라보아서 무슨 말실수를 했나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피하고 싶지 않았다. 


툭, 하고 약간 노래진 흰자 사이를 비집고 눈물이 굴러 나왔다. 분명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회한과 정념의 덩어리랄까. 그런 느낌의 농축액 같아 보였다. 2주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환자는 세상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던 부재의 시간이었으니까.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던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었다. 비록 암 환자였지만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암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어쭙잖은 위로로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보드라운 티슈로 액체를 닦아 드리고 조용히 침대를 떠나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새로 주문했다. 내일쯤 올 것 같다. 백업해 둔 데이터를 그대로 뒤집어쓰면 원래 쓰던 그대로 쓸 수 있다. 음악을 틀어 두고 샤워를 다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폰을 두는 장소는 변하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변기 뚜껑을 닫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그리고 꽤 커다란 지출이었지만 어쩐지 아깝지 않았다. 폰이야 사면되고 백업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복원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까짓 폰쯤이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샤워하다 미처 마치지 못한 노래를 마저 듣고 싶다. 물줄기처럼 흥얼대겠지.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빗속을’


오늘도 그 환자를 대하겠지. 어제보다는 나은 기분이길. 적어도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일이 그녀의 인생에 다시는 없기를.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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