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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15번

1706

일 년 남짓의 시간, 말도 탈도 많았다. 처음엔 진정제에 취해 이상한 소리를 하던 네가 있었다. 아직 수액으로 칼로리를 채우던 시기였는데 대뜸 치킨과 맥주가 먹고 싶다고 칭얼댔었다. 어이가 없었지. 그런 환자는 처음이었으니까. 보통은 목이 마르다고 시원한 물을 찾곤 하는데 진정제를 줄이자마자 너는 눈을 뜨고 저런 소리를 했다. 너의 아버지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얼른 나아지면 같이 치맥이나 하자, 너의 아버지가 희망차게 말했다. 나는 차마 동의할 수 없어 못 들은 척했다. 희망은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니까. 


네가 자리를 비운 지 일주일이 지났다. 11번, 1번, 15번 자리에 몸져누워있던 너를 하루에 열다섯 번은 생각하고 있다. 1년 동안 네가 겪은 공간이라고는 고작 한 평도 안 되는 침대 위.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머니와 늘 함께라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서른이 넘은 사람의 사회적 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그런 너의 마지막 일 년은 온통 간호사뿐이었다. 그렇다고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너무나 바쁘다. 고작해야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묻고는 진통제나 주고 효과가 있을 거라고 다독이는 수준이다. 게다가 하루에 세 번씩 꼭꼭 교대를 한다. 이런 것들이 꼭 집어 사과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 오히려 더 미안한 감도 없지 않다. 


한 달 전쯤인가. 다음 교대하는 간호사는 누구냐며 너는 뻐끔뻐끔 입모양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싶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름을 말해주자 그 간호사가 신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너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간호사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심드렁하게. 나는 소름이 끼쳤다. 이름까지 꿰고 있는 너의 지남력과 너를 너무나 환자로만 대했던 내 태도에 대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네게 실없는 농담도 하고 15분마다 자리를 정리해달라던 네 요청에 군말 없이 응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나를 포함한 모든 간호사들은 너무나 잦은 너의 콜벨에 솔직히 기쁘게 답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때만큼은 되도록 네 마음을 상하지 않게 대하려고 힘껏 노력했던 간호사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폐이식 후 반짝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른 문제가 또 터졌다. 여차저차 해결되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꾸역꾸역 생겨났다. 그래도 아직 입으로 밥은 먹을 수 있었다. 너의 어머니가 추어탕을 사 오기 시작했다. 병원밥을 질색하던 너를 위한 나름의 반책이었을 것이다.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의지하며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 너는 열심히 얼큰한 국물이라도 마시려 했다. 그리고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를 오갔다. 인공호흡기 회로에 물이 차면 혼자 툭툭 털어내던 쿨한 모습도 보였던 너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너의 베스트 샷이다. 욕창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었고 머리숱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오십이 넘었었던 너의 무게는 마지막 주엔 삼십을 간신히 넘겼었다. 그야말로 뼈와 가죽밖에 없었다. 드레싱을 하기 위해 움푹 파인 다리의 상처를 개방하면 그 처참함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너는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나는 아직 멀었다. 


끝내 일이 터졌다. 간신히 하루하루를 넘기던 너였다. 한 방울 한 방울 절망의 잔이 채워지고 있었다. 어느 때 그것이 넘치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 날 네 어머니의 한숨이 달라졌다. 무언가 직감하셨을 수도 있다. 급기야는 응급 카트가 네 침대 옆으로 옮겨졌다. 그때 나는 퇴근 중이었다. 약속이 있어 서두르는 중이었다. 너를 보았다. 조심스럽게 염탐하듯. 당당히 마주하기에는 알 수 없는 미안함이 있었다. 당시 너는 대체 어디를 바라보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눈동자가 무척 탁했다. 네 어머니가 히마리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 할 말은 없어 손만 잡아 드리고 묵묵히 빠져나왔다. 


네가 세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그렇게 사투를 벌일 때 나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최근 리부트 버전으로 개봉한 '미라'라는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던 나는 막바지쯤 경악을 하고야 말았다. 모래처럼 말라버린 미라의 형체가 좀 전의 네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 슬픈 이미지에 압도되어 나는 영화의 마무리가 어찌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극장의 문을 나서며 폰을 확인하는데 너의 비보를 듣게 되었다.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나왔다. 

그렇게 굳은 너를 보았다. 나의 눈도 같이 굳었다. 무엇을 해도 오르지 않던 붉은 혈압, 초점도 없이 그저 뜨고만 있던 너의 텅 빈 안구, 검어진 피부, 그보다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네 어머니의 가슴. 판화처럼 박힌 너의 마지막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디 하늘 어딘가에서 가슴 터지도록 힘차게 숨을 쉬고 헤파 필터를 거친 것이 아닌 지구 그대로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어다니길. 그리고 가끔은 치맥도 하길 빈다. 굉장한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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