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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히:스토리

1811

그는 사실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살아 움직일 적 정수리 한가운데서 빨갛게 너덜거리는  벼슬이 징그러웠다. 저런 게 달린 고기를 굳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먹을 기회가 생겨 호기심에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근육의 결대로 살이 찢기며 막간에는 퍽퍽함만 남는 식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후로 이십 년 간 그는 닭을 입에 전혀 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는 직감했다. 앞으로 닭을 먹어야겠다고. 그녀는 네 발 달린 가축의 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채식주의자의 어떤 단계라고 설명을 들었지만 중학교도 겨우 졸업한 그는 끝내 그 단어를 기억하지 못했다. 닭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결심에 가까운 의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결혼한 후에도 그 습관은 유지되었다. 다른 육류를 그렇게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아랫집에서 구워대는 삼겹살의 익어가는 소리 라던지 단골 과일가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소갈비 집의 달큼한 누린내는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넉 달에 한 번 정도 처가에 들러 혼자 자고 오게 되는 날마다 누가 볼세라 옆 동네의 고깃집에 들러 혼자서 3인분을 한 시간 반 동안 천천히 구워 먹곤 했다. 그는 삼겹살에서 흘러나오는 분홍색 육즙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바뀌는 그 기다림을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토시살이 입 안에서 톡톡 터지며 온 살결로 자신은 소고기라고 외치는 것 같은 순간을 그리워할 줄은 몰랐었다. 그의 은밀한 취향은 그가 기침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매사 착실했던 그는 사실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사십 년 동안 해온 미장이가 자신의 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이만큼 먹고살 수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은연중 감사하고 살아왔다. 비 오는 날은 쉬고 맑은 날은 힘차게 일하는 패턴도 실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들며 어깨가 굳고 손목이 아팠지만 그만큼 요령이 생겨나서 생각만큼 힘에 부치지는 않았다. 시멘트가 늘 묻어 있던 손가락은 점점 거칠어져 지문도 많이 닳았지만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대놓고 자랑할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훈장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조금은 고민했지만 팔자려니 하고 단념했다. 그녀도 얼마간은 아이를 몹시 바라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겠다고 했다. 그는 닭만 아니라면 별로 상관없었다. 그녀가 어디선가 데려온 고양이들은 보기에 시끄럽지도 우악스럽지도 않아 보였다. 움직이는 모양새나 말간 눈 같은 부분은 그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사료값 정도만 부담하면 되어 그렇게 큰 일도 아니었다. 퇴근 후에 소파에 앉아 어깨를 두드리고 있지만 가르랑 거리며 무릎 언저리를 갸웃거리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것이 어느새 낙이 되었다. 얼룩무늬가 탐스러웠던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나고 그보다 조금 더 귀가 솟은 고양이가 새로 들어왔다. 그녀는 무척 슬퍼했다가 다시금 기뻐했다. 그도 기뻤다. 


감기처럼 지나갈 줄 알았던 기침이 언젠가부터 멈추지 않게 되었다. 걱정스레 그를 보던 그녀가 기관지에 좋다며 한약방에서 도라지 즙을 한 박스 달여왔다. 쓰기만 한 그것을 그는 역시나 성실히 마셨다. 그다지 차도는 없어 결국 동네 의원에 가서 기침약을 지어먹었다. 그러나 낫기는커녕 가래까지 늘어났다. 어느 날은 기침 때문에 출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제야 큰 병원에 가보았다.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허파가 좋지 않다고 했다. 섬유처럼 조직이 변해서 숨쉬기 힘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미장이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물어보았지만 그런 원인은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는 딱히 약도 없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 더 심해지면 산소를 끼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직은 입원할 정도는 아니니 기침약과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의 약을 먹으며 버텨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무엇을 버티라는 것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안 그래도 오 년 안에 일을 그만두고 (그녀는 질색했지만) 귀농할 계획을 조금씩 세우고 있었는데 은퇴를 조금 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을 보니 그녀는 울고 있었다. 진찰실을 나오며 귀농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자 했다. 그는 기뻤다. 벌써부터 숨쉬기가 편해진 느낌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시골로 가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작은 거실의 낡은 소파 위에 누워만 있었다. 화장실도 겨우 갈 수 있었다. 이따금 바깥공기가 그리워 창문을 열면 허파가 튀어나올 듯 기침을 한동안 해댔다. 입술은 파래지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산소 밸브를 조금 더 열고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가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든 적도 있었다.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

기침약의 양을 늘렸고 잠을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그녀의 흰머리가 늘어났다. 그는 점점 말라갔다. 사실 그는 몹시도 돼지고기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닭죽을 쑤는 그녀에게 절대 알리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잔기침으로 시작된 것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더니만 급기야 객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증상이었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119를 불렀다. 앰뷸런스를 기다리며 그는 이대로 죽는가 싶었다. 사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녀였다. 그가 뱉는 피가 잔뜩 섞인 가래와 대조적으로 허옇게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는 그 와중에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울컥 뭔가 올라오더니 숨을 쉬지 못하게 막았다. 가슴이 뻐근하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 초인종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이것이 그가 제대로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당시 입원했던 환자의 히스토리를 토대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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