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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허:스토리

1812

사실 그녀의 왼쪽 귀는 태어날 때부터 잘 들리지 않았다. 딱히 불편한 것은 없었다. 남들도 다들 그러는 줄 알았었다. 국민학교 입학 전 어느 날 마당 구석에서 키우는 토끼를 보다 ‘쟤는 왜 귀가 저렇게 뻗쳐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퍼뜩 정작 본인은 한쪽 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툭툭 쳐보고 귀를 아무리 후벼보아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병원에서는 반대 편 귀는 매우 정상이니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했다. 그녀의 철없는 오빠는 토끼처럼 풀만 먹으면 걔네들처럼 귀가 잘 들릴 거라는 농담을 했다. 흰 밥처럼 순수했던 그녀는 그 실없는 말을 종교처럼 품었다. 푸성귀 반찬으로 한 끼를 때우면 어쩐지 조금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고기를 먹을라치면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닭고기 정도만 겨우 몇 점 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늘어나고 그들과의 대화가 많아질수록 오른쪽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기고 그 바람에 약간 어깨가 비뚤어졌다. 크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구부정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오감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여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이 그만큼 발달하는 모양이었다. 청력의 반을 잃은 대신 두 배의 후각을 얻게 되었다. 점점 민감해지는 감각 속에 미간의 주름이 펴질 날이 없었다. 그녀의 세상에는 향기보다 악취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들처럼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건설회사에서 일을 했다. 박봉보다는 그 안에서 피워대는 매캐한 담뱃내가 코가 떨어지게 싫었다. 다만 유일한 한 남자만이 금연 중이었고 그가 지나갈 때마다 정수리 근처에서 청결한 시멘트 냄새가 났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닭고기만 겨우 입에 대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이해하였고 기꺼이 따라주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끔 친정에 다녀올 때면 집에서 희한한 냄새가 솟구쳤다. 처음엔 시원찮은 보일러가 말썽 부린 것인가 했다. 하지만 다른 외출 때는 전혀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고 꼭 친정을 혼자 다녀올 때만 그랬다. 그녀는 그가 씻고 있을 때 작정하고 온 집안을 킁킁대다가 곧 출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남편이 마당 한 구석에 널어둔 외투였다. 분명 구운 돼지고기 냄새였다. 한쪽 귀가 먹먹 해지는 느낌과 동시에 애먼 미안함이 스며 나왔다.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것은 서로의 대한 배려이자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되었다. 다만 그 날만은 그녀는 돌아 누워 잠을 잤다. 그의 날숨에서 맡을 수 있는 연한 누린내가 참으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생기지 않아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넌지시 물어보아도, 칭얼대어도 허허 웃기만 하였다. 조바심이 났지만 그러려니 했고 더 이상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다. 고양이 두 마리를 들였다. 종아리 근처를 따사롭게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성실한 그의 기질과 촘촘한 돈 관리에 소질이 있던 그녀가 만나 집의 평수를 점차 늘려 갔다. 앞으로 십 년 정도면 노후 준비도 대충 완성이 될 것 같았다. 석 달에 한 번 국내여행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한 예산이었다. 평생 손가락에 시멘트가 마를 날이 없던 그와 남은 평생을 약간은 늘어지게 보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고뿔이 참 오래도 간다 했지만 거의 한 달치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그럴 땐 도라지가 좋다고 옆집 순이네가 그랬다. 거금을 들여 약 도라 지을 사와 정성스레 내렸다. 그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꼬박꼬박 마셔주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큰 병원에 가보라 했다. 쨍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던 의사가 단정하게 말했다. 폐가 섬유처럼 딱딱해져서 그렇다고, 딱히 약도 없다고 했다. 그저 버티면서 몇 가지 약으로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골로 이사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 왠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녀의 계획에 그는 미소를 담뿍 지었다. 


그녀의 야심 찬 계획은 새까맣게 망했다. 거동이 점점 힘들어지던 그는 어느 날 각혈을 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시퍼레진 그를 보며 그녀는 덜덜 떨었다. 구급차 안에서 그는 벌써 죽은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숨구멍에 기다란 관을 꼽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지만 어쩌면 영원히 뽑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단 다 해달라고 했다. 저렇게 쉽게 죽음을 들먹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그 경황없는 와중에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그르릉 거리기만 했다. 사료를 밥그릇에 붓다가 그녀는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왼쪽 귀가 아파왔다. 


입술에는 굵은 빨대 같은 것을 물고 발개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길게 늘어진 투명한 줄들이 그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양 손이 묶여 있었다. 집에 있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 보였다. 경고음이 요란스레 울리고 녹색 옷을 입은 여자가 뭐라 뭐라 말하는데 웅웅 거리기만 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수많은 약 냄새가 훅 끼쳐 왔다. 그녀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여보, 일어나 봐요. 이것 좀 먹어 봐요. 당신이 그렇게 몰래 먹던 구운 돼지고기 라오. 죽도 쒔어요. 고소한 잣죽에 한 점 얹어 먹어봐요. 나 이렇게 혼자 두지 마요. 이런 게 뭐라고 못 먹게 했을까 싶어. 제발 일어나 봐요. 나 혼자 두지 말아요. 고기 한 번 먹어 봐요. 응?




당시 입원했던 환자의 보호자의 사연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히:스토리와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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