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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난 널 몰라

1906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 있기는 합니다. 언제 변을 보았고 어떤 가래 색을 가졌고 보름 전부터 이 좁은 침대에 누워 어떤 치료 과정을 겪고 있는지 샅샅이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당신의 절절한 배우자도, 금쪽같은 딸들과 시큼한 아들들도 잘 모릅니다. 어떤 자세를 편하게 느끼며 어떤 이불을 좋아하는지 입원 전 기억으로만 당신을 대합니다. 중환자실에 내려온 지 5일 만에 욕창이 어느 곳에 어떤 양상으로 슬프게 생겼는지 저는 센티미터 단위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오늘의 전해질과 헤모글로빈 등의 자잘한 수치 또한 어렴풋 스쳐갑니다. 말초 혈관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 채혈하기에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심지어 당신의 침 냄새와 땀내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잘 압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붉은 맨드라미를 좋아했고 키가 컸던 첫사랑에게 용기 있게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는지도 몰랐습니다. 일곱 번의 중매 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항상 칼칼한 국을 준비하지만 정작 자신은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 가족도 잘 모를 겁니다. 식사를 가볍게 하고 후식으로 달콤한 수정과에 부드러운 곶감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토록 더웠던 작년 여름에도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살에 닿는 것이 송곳처럼 아파서 끝내 선풍기로만 버텨냈다는 것도 잘 모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말을 사실 믿지 않는 것도 몰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심심하게 손이 갔던 둘째 딸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는 것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녀만 보면 눈물을 줄줄 흘리는 당신을 보며 가족들은 어렴풋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의식이 없는 당신 앞에서 가족들은 당신과 관련된 소위 ‘썰’을 풀어냅니다. 엄마, 예전에 코스모스 좋아했잖아. 얼른 나아서 시원해질 때쯤 구경 가자. 지금 햇감자가 제철인데, 우리 엄마 포실포실하게 삶은 감자 진짜 좋아하는데. 정말 애처럼 웃었잖아. 나도 그거 보고 같이 웃고. 뜨거운 거 싫어하는 아빠는 질색했지만. 아빠, 나중에 같이 먹어 줘요. 그거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맨날 자기 입맛만 고집하고. 엄마 좋아하는 거, 엄마랑 같이 좀 먹어줘요. 기왕이면 맛있게. 


 들으려 하지 않아도 열린 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못 들은 척, 가끔은 적당한 맞장구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줄곧 보아왔던 드라마를 끝까지 못 보고 입원해서 참 아쉽다는 셋째 딸의 말이 퇴근할 무렵까지 침전물처럼 머릿속에 남아 끝내 그 드라마를 검색해보고 맙니다. 당신의 갖고 있는 질병만큼이나 당신에 대한 정보가 시나브로 쌓입니다. 다들 모르는 새 어떤 교수 파트의 몇 번 방 그 환자에서 오롯한 사람으로 다시 재정립되곤 합니다. 모든 환자에게 가슴 아파할 수는 없지만 당신만큼은 나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 되어감을 조심스레 고백합니다. 


어찌 됐건 당신은 타인입니다. 굳이 엄청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도 당신과 나는 굉장히 먼 거리의 사이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오롯이 여덟 시간을 당신에게 쏟고 당신 또한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매 초를 달립니다. 어디 아픈 곳이 없는지 매 번 묻습니다. 약을 투여합니다. 변을 치웁니다. 관급을 시작합니다. 어디 상처라도 생길까 자세를 변경합니다. 무척 무겁습니다. 축축이 젖은 기저귀를 교체합니다. 엄마도 아닌데 꼭 엄마 같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방금 이 감정은 당신이 엄마 같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하는 행위에 대한 느낌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실 이따금 웃을 때 보살처럼 물결을 이루는 당신의 눈꼬리가 우리 엄마를 닮긴 했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당신도 곤드레 나물을 좋아하나요. 조선간장에 물을 좀 타고 따뜻한 밥에 비벼 드리면 그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거든요. 아, 그렇게 웃지 마세요. 이쯤 되고 보면 내가 당신의 엄마인지 당신이 나의 엄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병원 밖을 나가게 된다면 다신 볼 일이 없겠습니다만,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굳이 가시던 길을 되돌아와서 고마웠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일하면서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의 나아져야 저도 활역을 찾은 것 같으니까요. 스스로 편히 숨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것들 잘 챙겨 드세요. 좋은 것도 많이 보시고요. 저는 아픈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모쪼록, 다시는 볼 일이 없길 바랍니다. 굉장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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