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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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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실은 당신이 싫소. 당신이 나에게 뭔가 원하는 눈빛을 보낼 때마다 그 눈과 마주친 내 눈이 원망스럽소. 당신의 요구에 지쳐 시뻘겋게 충혈된 내 눈알을 질끈 감고 싶소. 대체 또 뭐가 필요한 건지 침대 난간을 쾅쾅 두드릴 때마다 내 가슴도 붉은 단풍잎처럼 툭툭 떨어지오. 손가락만 한 튜브를 입부터 폐까지 꼽았으니 당연히 답답하리라 생각하오. 나부터도 빨대로 숨을 쉬라고 하면 돌아버리겠고 심히 괴로울 것이라 사료되오. 그래도 당신은 심했소. 진정제의 용량을 줄이기 전까지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소. 진정 난 몰랐소.


눈을 뜨자 당신은 그야말로 사시나무 떨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소. 한 순간이라도 눈을 뗄라치면 바로 두 손이 입으로 향하고, 등짝으로 벌레라도 기어가는지 걸레를 짜는 것처럼 전신을 비틀었으며, 그와 함께 당신의 몸에 꽂혀 있는 선들이 전깃줄처럼 온몸에 꼬여갔소.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었소. 나는 무척 지쳐갔소. 약물에서 막 깨어나 심히 분기탱천하는 당신을 상대했던 간호사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오. 나도 일을 해야 했고 당신은 안전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겠기에 나는 신체보호대라는 히든카드를 꺼냈소. 당신은 사지가 묶였고, 의사는 진정제의 용량을 조금 올렸소. 앞의 당신이 입 안에 불타는 돌을 머금고 뱉지 못해 미친 것 같은 용이었다면, 뒤의 당신은 그 돌을 강제로 식혀 치아 사이로 연기를 새어 나오고 있는 약간 힘이 빠진 용가리인 셈이오. 그때도 이 말을 전하긴 했지만, 묶어서 미안하오. 본심은 아니었소. 홀로 숨을 쉬지 못하여 그리 되었으니 어쨌든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소. 다시금 미안하오.


그 후로 며칠 동안 당신은 내가 품었던 직업의식 혹은 윤리까지 도전하는 저력을 내뿜었소. 언제까지 고용량으로 진정제를 유지할 수는 없기에 조금씩 줄여갈 수밖에 없었소. 줄여가는 양과 정확히 비례하게 나는 당신이 싫어졌소. 미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사직의 욕구가 당신을 상대하는 시간만큼 한 뼘씩 자라났단 말이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당신의 똥오줌과 가래까지 받아내며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인지 매우 의구심이 갔소. 그냥 다 내려놓고 당신이 살든지 말든지 관심을 끊고 싶었소. 그렇지만 현재 나는 간호사, 당신은 환자였소. 당신이 힘차게 지려놓은 기저귀를 갈고 그 난리 치는 와중에 욕창이라도 생길까 드레싱까지 챙기고 땀에 절여진 환의까지 갈아 입혀주는 것이 이 업보라는 말이오. 모든 초점이 당신에 맞춰진 중환자실이라는 장소 자체가 혐오스럽기까지 했소. 모두가 당신 때문이오.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오.


그럼에도 부룩하고 어쨌든 당신은 행운아였소. 당신의 날뛰는 행동과는 반비례로 당신의 폐가 끌어안고 있던 염증은 점점 사라져 갔으니 말이오. 몇 번의 위기가 있었더랬지만 어쨌든 쭉쭉 좋아져 갔소. 드디어 공식적으로 익스투베이션했던 날, 당신은 의외로 얌전했소. 침상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당신이 나는 낯설었소. 튜브를 뽑자마자 나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고도 남을 것 같은 당신이었으니 말이오. 갑자기 당신은 침대 난간을 툭 쳤소. 나를 부른 것이오. 나는 긴장했소. 꾸물꾸물 다가갔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소. 당신은 부은 성대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쉰 목소리로 나에게 답했소. "수고했어요. "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당신이 그렇게 싫진 않았을지도 모르오. 매일 설사를 하다 모처럼 된똥을 발견했을 때 나도 모르게 기뻤던 것 같소. 체위 변경을 할 때 가끔씩 엉덩이를 들어주어 약간 수월하게 당신을 옮길 수 있었소. 그때 조금 고마웠소. 그렇지만 역시 나는 당신이 싫소. 왜냐하면 방금 당신은 에이라인을 스스로 뽑았기 때문이오. 레드 알람이 우렁차게 울리오. 온 침대가 새빨갛게 피범벅이 되었소. 내일까지만 버티면 알아서 뽑아주고 전동까지 깔끔하게 시켜줄 텐데 대체 이게 뭔 짓이오. 나는 당신이 싫소. 진짜 싫소.




중환자실은 환경적인 특성 상 환자들에게서 섬망 증상이 흔히 발생합니다. 고령일수록 더욱 잦습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가 많기 때문에 신체보호대를 적용하여 환자의 안위를 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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