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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26. 2017

003-03. 슬프고도 웅장한 아름다움

아침 6시, 오랜만에 핸드폰 알람으로 시작하는 설레는 아침이다. 전날 잠을 늦게 잔 탓에 다소 피곤한 감도 있었지만 일어나면서부터 신나 있었던 것은 며칠 전 신청한 근교 투어 때문이었다. 여행 중 간간히 신청하는 일일투어가 있는 날이면 난 항상 이렇게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전날 밤부터 신나 있었다.


투어 집합장소인 아속(Asok) 역으로 가는 길, 주말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적당히 시원하고 습한 날씨, 조용하기에 더 선명하게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아직은 강하지 않은 햇빛 모든 게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 이른 아침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아침 8시가 다 되어 갈 때쯤 우린 집합장소에 다 달았다. 아속(Asok) 역 근처 맥도널드 앞에는 우리 투어를 제외하고도 꾀나 많은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느 투어 오셨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수많은 차량들을 보며 멀뚱멀뚱 서있는 우리에게 한 직원이 다가왔다. 우리 이름을 말하자 옆에 있던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다가와 차량을 안내해주었다. 조금 낡았지만 에어컨만은 빵빵해서 냉동고 같이 추운 작은 봉고차를 타고 우리의 아유타야 투어는 시작되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을까? 부쩍 느려진 자동차 속도에 잠에서 깨어났다.


"차가 이렇게 덜컹거리는데 잘도 잔다."


아직 비몽사몽해 있는 나에게 누라가 말했다.


"도착한 거야? 아 목아퍼..."

"도착했습니다. 여러분 방파인 여름 별장입니다"


장시간 한 자세로 잠을 잔 덕분에 굳어버린 목을 주무르며 와이프에게 말할 무렵 가이드님이 팀원들에게 도착을 알렸다.


"오 도착했나 보다"


가이드님의 말씀에 기대감을 가지고 입구로 들어선 바로 그 순간 우리를 맞이한 것은 더운 날씨와 그저 그런 방파인의 모습이었다.


"음... 멋지긴 한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하지?"


가이드님을 따라 투어를 따라다니던 중 중얼거리는 내 말을 누라가 이었다.


"응 뭔가 파타야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아"


저번 주 큰 마음을 먹고 거금을 들여 파타야 투어를 가서 큰 실망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는 이번 투어도 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던 파타야. 하늘에는 낙하산이 바다에는 요트들이 둥둥 떠있어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파타야 해변과 싸매비치. '남들 다 가는 곳이니 가보자 해서 갔던 것을 그렇게 후회하였건만 이번에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방파인 투어를 마치고 '왓 마하 탓(Wat Maha That)'으로 이동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도 망했나? 그냥 이 돈으로 똠얌꿍이나 사 먹을걸 그랬나?"

"그래도 아직 왓 마하 탓은 안 갔잖아"

"아니야 망한 거 같아 덥고 덥고 더워 배도 고프고... 역시 남들 다 간다고 가는 게 아니었어"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누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 투덜거림은 끝이 없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나에게 방파인은 그랬다. 더운 날씨에 민감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아까운 시간과 경비를 소비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많이도 났다.


"왓 마하 탓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도 가이드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여기가 '왓 마하 탓'이야?"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누라가 말했다.


"응 그렇다네..."


난 그 경이로운 풍경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웅장하고도 조용한 그곳에는
슬프지만 당당한 기운이 차분하게 맴돌고 있었다.

아유타야는 1767년 버마(지금의 미얀마)에게 침략을 받기 전까지 이곳은 태국에서 가장 번창했던 왕국이었다. 서양과의 접촉이 최초로 이루어진 이곳은 한 때 찬란했던 과거를 증명하며 당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 미얀마군에게 잘려나간 불상의 머리들


"여기는 정말 꼭 와야 하는 곳이네"

"응 여기 정말 마음에 든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건넨 나의 말에 누라가 답했다. 방파인에서 투덜거렸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아유타야에 온 것을 후회하던 내가 창피할 만큼 그곳은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다음에 태국에 온다면 여긴 다시 올 것 같아"


잠시 전까지 투덜거리며 투정만 부렸던 주제에 금세 신나서 떠들고 있는 나를 째려보는 누라의 눈빛을 가뿐히 외면하며 내가 말했다. 어떤 여행자분이 쓴 책에서 '남들이 다 가는 곳엔 이유가 있더라'라고 한 글귀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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