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5. 해리포터 열차 사건

영국, 아일랜드 왓슨스-런던

by 개포동 술쟁이

오늘은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다녀왔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는 해. 알. 못이다. 반면 누라는 해리포터의 광팬이다. 때문에 난 누라에게 해리포터를 속성으로 배우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고 잘 다녀왔다. 영화를 정주행 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는 곳이었다. 누구에게나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오늘 난 누라와 잠시
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는 순간 발생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럽의 대중교통은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우린 파리 지하철에서도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땐 지하철이라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열차였다. 정거장과 정거장이 무지막지하게 먼 열차.


먼저 열차에 들어간 누라, 닫히는 문을 보고 다급하게 오픈 버튼을 누르는 나 그리고 무심히 닫히는 문.


그렇게 열차는 누라를 납치했다. 그나마 열차가 5~10분 간격으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난 누라를 따라가기 위해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정말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열차에 남편이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뒤늦게 오픈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여코 문은 닫혔고 남편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다. 난 바로 다음 정거장을 확인하기 위해 열차를 살피다 또 한 번 놀랐다. 열차의 종착지가 유스턴(Euston)이 아닌 게 아닌가? 시계를 보니 전광판에 적혀있던 열차시간보다 2분이 빨랐다. 그렇다 난 열차를 잘못 탄 것이다.


핸드폰이 없는 게 이렇게 한스러울 줄 몰랐다. 여행 전, 내 핸드폰은 이미 고장 나 있었다. 유심을 인식하는 센서가 고장 났단다. 하지만 난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거나 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파손이나 분실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여행이 끝나고 고치거나 새로 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한참을 달린 열차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날 버려두고 떠났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이 유독 많이 느껴졌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내리긴 했나 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에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려 보았다. 한 대는 무심히 역을 지나쳤고 이어서 들어오는 열차엔 남편이 없었다. 열차를 잘못 탄게 확실해 보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이 전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만약 남편이 내가 열차를 잘못 탄 것을 알았다면,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반대 플랫폼으로 넘어가 열차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열차가 멈추지 않는다. 누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정거장들이 쏜살같이 사라진다. 처음엔 작은 역이라 그냥 지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열차는 큰 역 작은 역 가리지 않고 쏜살같이 유스턴으로 향했다. 그렇다. 내가 탄 열차는 급행이었던 것이다. 당시 그나마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면, 누라가 탄 열차도 급행 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이름 모를 역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거나... 하지만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지 이번에도 정확했다. 유스턴에 누라는 없었다.


역시나 남편은 역에 없었다. 플랫폼을 비롯해 화장실 앞도 기웃기웃 거리고 흡연실도 가 보았지만 남편은 없었다. 열차를 타고 유스턴으로 간 게 확실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스턴으로 가는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사라질 동안 조용히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행여나 많은 인파에 섞여 누라를 못 알아볼까 봐서였다. 하지만 누라는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가능하면 집으로 빨리 가서 누라에게 연락하는 것. 다급해진 나는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튜브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탔다. 새치기는 기본이었다. 퇴근길, 북적이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런 행동이 비매너적인 것은 알지만 난 빨리 집으로 갈 생각뿐이었다. 오늘 따라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이 길게만 느껴지더니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까마득하게만 보였다. 유독 바람이 강하게 느껴지는 날씨, 시계를 보니 대략 1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만약 정거장에서 긴장하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간과 날씨였다.


생각해 보면 여행을 시작하고 100일이 지나도록 우린 24시간 내내 붙어있었다.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시간은 화장실을 가는 경우 빼곤 없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였다. 이렇게 혼자서 무엇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지만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온 난 바로 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빈자리에 대해 생각을 할 때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괜찮아?"

"지금 유스턴 가는 기차인데, 넌 집이니?"

"어 연락하려면 이 방법뿐이잖아. 내가 탄게 직행이더라고."

"나 왓포드까지 갔다가 너 없어서 바로 열차 타고 가는 길이야."

"왓포드는 왜 돌아간 거야? 별일 없지?"

"응 아무 일 없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난 긴장이 풀렸다. 너무 반갑고 반가웠지만 평소 감정표현에 서툰 난 그저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뭔가 찝찝했다. 먼저 집에 온 게 이상하게 죄스러웠다. 잠시 후 누라로부터 유스턴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유스턴에서 집으로 오는 언더그라운드를 타러 간다 했다. 난 바로 지하철역으로 누라를 마중 나갔고 우린 금방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별일도 아닌 사건 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고 이렇게 오래 떨어져있던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2시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오간 하루였다. 앞으론 열차든 지하철이든 무조건 동시에 타야겠다.


*튜브
런던 지하철의 애칭. 생긴 것이 동그랗고 귀여워 튜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언더그라운드
영국에선 지하철을 언더그라운드라 부른다.


그럼에도 안올리면 아쉬운 해리포터스튜디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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