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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28. 2017

003-05. 방콕 안녕...???

해탈한 누라

한국과는 달리 좌측으로 달리는 차도와 우측에 있는 운전석이 익숙해지고 오른팔에 새긴 헤나가 흐릿해질 때쯤 우린 방콕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누라..."

"왜 또 정들었어?"


대만에서 그리고 베트남에서 1주일가량 머물렀음에도 그렇게 떠날 때 아쉬워했는데 이번 방콕은 2주 넘게 있었다. 그러니 오죽하랴...


"응... 방콕 안녕 잘 있어..."


하루 2만원 근처로 저렴하게 묵었던 방콕의 숙소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는 나를 누라가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한 30분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을까? 우리는 '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지금 얼마 남았지?"

"한 600바트정도? 이거 넘어가기 전에 다 써야 하는데"

"그냥 그거 싱가포르달러로 환전해서 갈까? 얼마 안 되어도 그게 어디야"

"오 누라, 지혜롭구먼 그래 태국에서 펑펑 쓴 걸 속죄하는 마음으로 공항에선 지출을 하지 말자"


600 바트면 싱가포르달러로 대략 24달러 한화로는 2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장기 여행자 신분에겐 무시 못할 금액이었다. 특히 다가오는 유럽의 물가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에겐...


"그래 싱가포르 가서 맛있는 거나 먹고 여기선 참자"


와이프와 환전의 각오를 다지고 체크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체크인 시간


"누라 잠시만 기다려 몇 번에서 체크인하는지 보고 올게"


체크인을 어디서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광판 앞으로 다가간 그 순간, 난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우리 항공편 옆에 적힌 'Canceled'라는 글자를...


'뭐지... 취소? 응? 누구 마음대로? 갑자기? 지금? 나 여기 있는데? 싱가포르 가야 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지금 이 항공사 어느 나라 꺼더라?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아참 난 번호도 정지시키고 왔는데?'


방콕에 우리 둘 만 버려진 상황인 것 같았다. 우리만 빼고 세상이 돌아가는 듯한 기분...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은 직원들이 모두가 사무실에 있는 오후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누라 망한 거 같아 비행기가 결항되었데"

"응? 갑자기?"

"응 갑자기 일단 항공사직원에게로 가보자"


우리 항공기가 결항되었다고 해도 다른 항공편은 정상적으로 운행될 것이라고 판단한 우리는 무작정 항공사 직원에게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전광판 어디에도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는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우리는 일단 공항 안내소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고객님 항공사가 어떻게 되시죠?"


안내소 직원의 물음에 항공사 이름을 말하자 다행히도 직원은 항공사 데스크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어느 정도 일이 풀릴 거라고 생각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항공사 데스크로 찾아갔다.


"고객님 항공편은 내일로 변경되었네요."

"네? 이렇게 갑자기 변경되어도 되는 거예요?"

"오래전에 변경된 항공편이고 안내 메일도 보내드린 걸로 나옵니다."

"네? 어느 메일로요?"


데스크 직원이 알려준 메일 주소를 보자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메일 주소에는 우리가 구입한 항공권 판매대행 사이트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거 제 메일 주소 아니에요. 제가 구입한 사이트 주소예요"

"아무튼 저희는 메일 보내드렸고요. 자세한 사항은 항공사에 문의하셔야 해요."

"여기가 항공사 아닌가요?"

"저희랑은 계열이 좀 달라서 제가 안내해드릴 수 없네요. 여기로 전화하세요"


직원이 전해준 쪽지에는 태국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다행히 공항에서 구입한 유심에 무료통화 서비스가 있어서 잠시 동안 통화는 가능했지만... 문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한 10분 동안 계속 시도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요."

"그 번호 맞는 거예요. 저희가 도와드릴 방법은 그게 다예요. 그 번호로 전화하세요"


아니 무슨 이런 답답한 경우가 있나. 전화가 안된다는데 전화를 하라니... 점점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던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여기 어디예요? 번호가 있으면 사무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직접 찾아갈게요."

"그 번호는 ARS 서비스예요. 번호는 태국 번호지만 사무실은 존재하지 않아요."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답답함과 막막함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화로 인해 사무실까지 찾아가 따지려고 들었던 나를 누라가 말렸다.


"그만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누라의 말에 데스크 직원과의 대화를 끝낸 나는 공항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항공사 홈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번호로도 쉽사리 연락되지 않았다.


"아 이 망할 항공사 뭐 하는 거야 그리스로 넘어갈 때도 여기 예약했는데! 그때도 결항되면 우린 산토리니 가는 배도 못 탄다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조급해진 내 목소리는 많이 격양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라는 조용했다. 같이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태국에서 본 부처님 표정처럼 온화했다.


누라는 정말 이런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통화해"


온화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누라가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어딘데?"

"항공사 서비스센터"

"어떻게 찾았데?"

"들어가 보니까 있더구먼 뭘"


태국에서 사원을 많이 드나들면서 해탈이라도 한 건지, 난 그렇게도 어렵던 통화연결을 손쉽게 해결한 누라가 나에게 말했다.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리고 상담원이 연결되었다. 항공사와 판매대행 사이트의 상담원들과 통화를 한 결과 항공사에서는 세 번의 변경 공지를 보냈으나 판매대행 측에서 나에게 공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판매대행사 측은 항공사와 통화 후 진위여부를 가려 다시 연락은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난 유심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번호로 나에게 전화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불안했다.


"지금 유심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 통신사는 정지를 해둔 상황이에요.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 그 사이 제가 항공사와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3시가 넘었고 우린 공복 상태였다. 싱가포르에 환전 해갈 생각이었던 600바트는 비싼 공항의 밥값에 의해 탕진되었다. 조만간 찾아올 위기를 알지 못한 체 우리는 최후의 만찬을 시작하였다.



"밥도 다 먹었겠다. 다시 전화해볼까?"


밥값을 계산한 후 얇아진 지갑을 주머니에 넣으며 통화를 시도하던 내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우리 서비스되는 통화시간을 다 쓴 거 같은데?"

"그럼 전화 못하는 거 아니야?"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한 것이 첫 번째 화근이었고 아무런 대책 없이 전재산을 쏟아부은 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해외통화시간을 늘리기 위해 유심을 구입한 곳으로 찾아가니 최소 충전금액이 50바트라고 했다.


"우리 얼마 있지?"

"우리 20바트 한 장이랑 동전 조금 남았는데?"


당황한 우리는 가방과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으고 모아 겨우 50바트를 만들었고 대략 2분의 통화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 희망이야. 상담원과 가능한 한 빨리 연결되어야 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수화기 건너편으로 상담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남은 돈은 3바트. 물론 현금인출을 하면 되지만 태국 ATM은 여러 곳에서 인출을 해 보았지만 모두 220바트의 수수료를 받았기에 그 돈이 너무나 아까워 도저히 인출할 엄두가 안 났다. 슬슬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에게 누라가 말했다.


"그냥 근처 호텔에서 오늘 하루 묵자. 결항 같은 경우엔 항공사에서 배상해준다고 하잖아?"

"바우처로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던데, 이 근처면 호텔뿐인데 보상 못 받으면 우리 타격이 너무 크지 않아? 그리고 아직 진위여부로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공항 노숙을 할 수도 있지만 보상받을 수도 있는데 고생하는 건 아깝잖아."


누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 잘못도 없는데 굳이 노숙을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일단 가서 쉬자"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 앞에 있는 호텔에서 체크인을 했다. 가격은 무려 방콕에서 머문 숙소의 4배 이상하는 가격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엄청난 타격이 예상되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누라와 함께라 정말 다행이야."


이번 여행의 예정에 없던 4성급 호텔방에 들어서며 내가 말했다. 넓고 깔끔한 방에 있는 크고 푹신한 침대가 우리를 반겼다. 그렇게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불안한 호사를 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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