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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31. 2017

004-01. 이 도시를 계속 싫어할 수 있을까?

철부지 어른

다행이었다. 항공권 대행사는 몇 번의 메일 교환을 통해 우리가 입은 피해금액 전액에 약간의 위로금을 더해 보상해 준다고 하였다. 바우처로 대신한다거나 까다로운 보상절차를 들먹이며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거 싱가포르 일정이 하루 줄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 이득일지도 모르겠는데? 언제 그런 곳에서 자봤겠어?”


싱가포르 공항 검색대에 짐을 올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아니 근데 여긴 짐 검사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비행기에 내려서도 검사를 하는 건 처음이네?”

“요즘 테러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샌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싱가포르는 ‘샌님’ 같은 느낌이 강한 나라다. 굉장히 어렸을 때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가이드님에게 들은 태형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였을까? 싱가포르는 나에게 원칙만을 강요하는 답답한 ‘샌님’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가방 안에 담배가 있습니까?”


기계 밖으로 나온 가방을 집어 들으려는 나에게 검사원이 물었다.


“네, 두 보루 정도? 다른 나라 면세점에서 구입한 것들이에요.”

“두 보루요? 고객 사무실로 가세요.”


아니 무슨 이유인지도 말 안 하고 무작정 고객 사무실로 가라니?


“왜죠? 싱가포르에 들어올 때 면세점에서 담배를 구입하지 못하는 건 알고 있어요. 아지만 이건 다른 나라에서 구입한 거라고요.”

“싱가포르는 담배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어요. 고객 사무실로 가세요.”


검사원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무슨 마약이 의심되는 물건이라고 가진 사람 대하듯 하는 검사원의 태도에 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가방을 집어 든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고객 사무실로 걸어갔다.


“왜 내가 저길 가야 하는 거지? 다른 나라에서 구입한 걸 가지고 왜 뭐라 그러는 거야?”


내 투덜거림은 고객 사무실로 걸어가는 내내 이어졌다.


“무슨 일로 오셨죠?”

“검사원이 가보라고 하던걸요?”

“혹시 담배 때문에 그러신가요?”

“네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인천공항이나 대만 공항에서 산 것들이거든요.”

“얼마나 있으시죠?”

“두 보루요.”

“꺼내보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난 다른 곳에서 구입한 것을 증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내가 가진 전부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 담배를 본 직원은


“음… 이거 다 가지고 가시려면 200달러 가까이 되시겠는데요?”


라는 말로 날 당황시켰다.


“네?”

“싱가포르는 담배를 가지고 입국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들고 가고 싶으시다면 갑당 8~9달러를 내셔야 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가 구입한 걸 가지고 못 들어간다니… 이게 마약도 아니고 밀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유럽에선 담배가 비싸니까 공항 면세점에 들릴 때마다 그 나라에서 구입할 수 있는 양만큼 양심적으로 사 모은 것들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황해서 말도 못 하고 있는 나에게 직원이 말했다.


“들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바로 여기서 파기합니다.”


방법이 없었다. 저걸 다 가지고 들어가기 위해선 한화로 20만 원에 가까운 돈이 필요했다. 아무리 샘을 해봐도 이건 손해 보는 장사였다.


“파기해 주세요.”


울며 겨자먹기로 파기를 선택한 나는 눈앞에서 갈려지는 두 보루의 담배를 바라볼 뿐이었다.


“꼴좋다 그렇게 피지 말라는 담배를 피우니까 벌 받은 거야.”


고객 사무실을 나오며 씩씩거리는 나를 보며 누라가 놀려댔다. 누라의 놀림을 받으며 공항 출구로 나가던 도중 아까 그 검사원이 나에게 가방을 올리라는 손짓을 했다.


“몇 번을 검사하는 거예요? 지금 고객 사무실 다녀온 거 안 보여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자 직원은 그냥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냥 기분이 나빴다.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시작부터 싫었다.


“저 사람들은 왜 검사 안 해?”


씩씩거리며 검사원들의 존재도 모른 체 자연스럽게 출구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누라에게 말했다.


“복불복 인가 보네.”


더 화가 났다. 왜 나만 걸린 거지? 왜 나만 재수가 없지? 싱가포르는 무슨 권리로 내 담배를 빼앗으며 금전적인 피해를 주는 거지? 부끄럽지만 당시의 나는 잘못은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고집 피우는 꼬마처럼  뾰루뚱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 나의 심통은 극에 달했다.


“저 놈들은 뭔데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거야? 걸어 다니면서 못 핀다며!”


싱가포르에선 흡연도 정해진 지역 외에선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모두 나를 놀려대는 것 같았다.


“세금이랑 벌금으로 돈 뜯어먹는 얍삽한 것들!”


점점 투정 거림과 언성이 커질 무렵 누라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그만 좀 해 네가 잘못한 거잖아? 철 좀 들어라 남편아.”

“뭐? 내 잘못…?”

“그래 여기 법이 그런 건데 어떻게 해? 몰랐던 네가 잘못한 거지. 그만 좀 씩씩거려라”

“아 몰라 짜증 나 여기”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내가 잘못한 거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싱가포르에 왔으면 싱가포르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갑작스러운 비행기 결항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받아온 스트레스를 어딘가에는 풀고 싶었는지 내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사전조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나에게 가장 화가 났지만 불똥은 자꾸 엄한 곳으로 튀었다. 숙소로 가는 길, 나는 계속 검사원이 내 담배를 몰라봤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결과론을 들먹였고 창피하게도 내가 검사를 당했으니 남들도 당했어야 했다는 유치한 심술까지도 부렸다. 그야말로 심통. 철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더 이상 캡처해 둔 지도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숙소에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싱가포르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이 깔끔하고 멋진 도시는?'


깨끗하고 선명한 도시 싱가포르의 야경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다른 하나의 생각


'나 싱가포르한테 화내고 있는 중인데?'


깔끔한 홍콩 같은 야경에 넋이 나가 보고 있는 나에게 누라가 말했다.


"뭐야 싱가포르 싫다더니 뭘 그리 빤히 보고 있어?"


거부할 수 없는 야경의 매력을 외면하려 애쓰는 철없는 내가 말했다.


"나 싱가포르를 계속 싫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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