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싱가포르에서 산토리니로 넘어갈 때쯤, 난 내 여행에 창피하게 생각했다.
적지 않은 나이, 큰 결심과 함께 시작한 내 여행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라와의 트러블이 빈번해졌고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던 어느 날, 난 그 원인을 내가 활동하던 여행 커뮤니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활동하던 커뮤니티에는 한 명의 회원이 있었다.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벌써 수년째 무전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무전여행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질문을 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뮤니티는 히치하이킹이나 무전여행에 관심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지금 같으면 주된 관심사가 다른 커뮤니티에서 나오거나 그들의 여행을 지켜보기만 했을 텐데, 그땐 아니었다. 분야가 다른 그들에게 까지 내 여행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커뮤니티의 회원 중 하나가 내 가방의 무게를 듣더니 '아직 지킬게 많으신가 봐요?'라고 말해 발끈한 적도 있다. 비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나도 참 노답이었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여행만이 진정한 여행이라며 내 여행을 깔보는 것처럼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엔 그랬다. 편하게 여행을 해서 인정을 못 받는 것인가? 내 여행은 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 보일까? 하며 한 없이 내 여행을 비관했다.
그래서 그 커뮤니티를 나왔다. 더 이상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커뮤니티를 나온 다음날, 신기하게도 여행이 즐거워졌다. 남을 의식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니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내 여행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알았다.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 그들은 내 여행을 깔본 적이 없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꼭 내 여행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었다.
커뮤니티를 나온 후, 누라와 겪던 트러블도 사라졌다. 원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누라와 우리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결과 그녀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숙소의 청결과 안전성이었다. 반면 나는 제대로 된 식사(정확히는 맥주)였다. 서로 추구하는 여행에 대한 관점이 달랐었다. 그래서 서로가 선택하는 숙소나 식당이 못마땅했던 것이고 트러블이 잦았던 것이다.
*군맹평상(群盲評象)이라는 말이 있듯 세상에는 수많은 관점과 편견이 존재한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세상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관점의 교집합 중 규모가 큰 것들을 우린 상식이라 부르고 일부는 법으로 규정시킨다. 하지만 그 교집합에 있는 것들이 전부 정답일까? 아니다. 나라마다 법이 다르고 저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여행에도 정답이 없다. 서로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여행하든 자신이 즐거웠다고 생각되면 그게 최고의 여행이다. 그것이 패키지든 무전여행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여행은 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내 여행을 초라하게 생각하는 것.', '남들을 따라만 하며 내가 여행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 '내 여행만 옳다고 생각하며 남의 여행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여행들이었다.
난 잘못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내 여행을 초라하게 여겼고, 하지도 않던 SNS를 시작해 좋아요에 목숨 걸었으며 나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했다. 이후 난 이전과 다른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다.
가만 보면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인생도 여행처럼 살기로 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고 남들의 삶을 멋대로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항상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상대에겐 진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른 것은 있어도 틀린 것은 없다.
*군맹평상(群盲評象) :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평가하다.'는 뜻으로 장님들이 서로 다른 코끼리의 부위를 만지고 와선 자신이 만진 부위가 코끼리의 전부인 것 마냥 우기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하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