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어제 성당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테르미니역(Termini)에서부터 만원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헤어짐을 경험한 우리는 꼭 붙어 지하철을 탑승했다. 무사히 지하철에 탑승했다는 안도감이 들 무렵 한 무리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누가 봐도 우리는 일행임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은 굳이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난 그들에게 떠밀려 사라지는 누라에게 가기 위해 다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밀지 마. 밀지 마."
그들 사이를 비집고 가는 나를 강하게 밀며 그 일행 중 한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170cm도 안돼 보이는 그 어린 남자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 누라에게 먼저 가야 한다는 마음에 애써 그를 무시했다.
"어 미안. 미안"
난 한국말로 대답했다. 굳이 영어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음 역으로 가는 동안 그 일행들은 아주 가관이었다. 옆에 있던 여자애는 일부러 내 발을 밟기도 하며 은근 시비를 걸었다. 싸움을 걸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2분쯤 흐르자 지하철은 다음 역에 도착하였고 내리는 사람들로 인해 잠시 한산해진 틈을 타 우리는 옆문으로 이동하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일부러 싸움을 걸어오는 태도, 우르르 몰려다니는 행동이 소매치기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지하철이 닫히는 순간, 가방을 만져보던 한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가방 안에 지갑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은 이미 출발했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 여성은 빈자리에 철푸덕 앉더니 이내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엔 안타까움과 민망함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여성이 한없이 안쓰러워졌다. 만약 그들이 시비를 걸 때 내가 반응했다면, 지하철엔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로 인해 승객들의 시선이 더 분산되었을테니 말이다. 듣기로 소매치기들은 마술사와 같아서 타깃이 되면 정말 순식간에 털린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이나 글을 보면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애초에 타깃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해 보인다.
지금은 겨울이라 소매치기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이 따듯한 도시로 많이 움직였다고 한다. 지금 있는 곳이 이탈리아고 다음이 스페인이라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