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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Aug 14. 2017

주관적 맥주기행_00. 유럽 맥주의 간략한 역사

세계여행을 하던 도중 맥주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만난 동키맥주 때문이었다. 통키맥주는 오직 산토리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다. 양조장도 그리 크지 않아 산토리니에서 유통되는 양도 매우 적다. 이런 희귀한 맥주를 접하고 보니, 앞으로 유럽에서 마시게 될 맥주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갈증해소용으로 마시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만을 기록한 맥주 기행록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지극히 나만의 생각만 100% 반영된 맥주 도감을


이건 앞으로 여행하면서 내가 맛보고 느낀 맥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리로 만든 메트나 마시는 족속이라니..."

-그리스 비극 작가 아스르킬로스


"사람들이 *폴토스라는 이름의 보리죽을 만들어 먹더라"

- 그리스 서시사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호메로스

*폴토스 : 과거 맥주와 비슷한 음료


(출처 :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 야콥 블루메, 김희상 역)


맥주와 더불어 와인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마셔왔다. 다만 위의 아스르킬로스나 호메로스가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맥주는 상당히 저급한 음료로 인식되었다는 것만 다르다. 이 시대의 그리스 사람들은 와인을 주로 물에 타서 마셨기 때문에 취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취하는 것은 매우 야만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니 맥주를 달고 살면서 취하는 게 일상인 북쪽의 게르만족들이 얼마나 야만스럽게 보였을까?


그렇게 그리스에서 맥주는 천시를 받으며 역사는 로마시대로 접어든다. 로마시대에도 맥주는 역시 천대받은 음료였다. 하지만 800년, 누군지는 몰라도 이름은 아는 카를루스 대제가 교황에게 제관을 수여받으면서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성상 숭배 문제로 동로마 황제와 갈등 중이었던 교황에게 힘이 되어준 카를루스가 바로 맥주광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로 거듭난 이후 카를루스는 양조사업게 적극 지원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종교적 거점인 수도원을 방문할 때 세금을 받는다거나 양조사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지시하는 등 그의 맥주사랑은 대단했다. 서유럽의 일인자인 그가 이토록 맥주를 사랑하니 유럽 맥주의 발달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보긴 힘들다. 역사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도원 맥주만 해도 그렇다. 전염병으로 인해 물이 쉽게 오염되자 홉이 들어간 맥주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수도원 맥주가 발전했다는 설이 있는 반면 어느 지역의 수도원은 수익사업을 위해 만들다 보니 발달했다 한다. 또 영국의 수도원은 파견 나온 수도사들이 와인을 만들 환경이 되지 못해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지역별로 시대별로 각자 다른 이유에서 맥주가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카를루스 대제의 영향력이 맥주 발전의 박차를 가하건 사실이다. 그러나 맥주는 그때가 아니라도 계속해서 발전했을 것이다. 현대의 술이 점점 약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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