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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Aug 23. 2017

Day 53. 브라쇼브 너마저

루마니아, 브라쇼브

오늘은 브란성을 가기로 한 날이지만 취소했다.

아무래도 시나이야는 브라쇼브에서 고생할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도 아름다웠었나 보다.

브라쇼브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이 깜깜 해지는 경험을 또 하게 되었다. 숙소 예약대행 사이트에서 오버부킹을 하는 바람에 우리 숙소가 예약되지 않았던 것이다. 숙소 측은 예약을 받을 수 없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대행 사이트 측은 우리에게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마치 태국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가는 비행기의 딜레이 소식을 받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최대의 성수기인 브라쇼브는 비싼 호텔도 여분의 방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노숙이 불가피했다. 지금은 저녁 6시… 일단 누라와 역할을 분담해서 근처의 숙소를 미친 듯이 검색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 급작스럽지만 예약을 받아줄 수 있냐는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거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데? 호텔도 빈방이 없어.”

“호스텔이며 비앤비도 마찬가진데?”


아무리 찾아도 방은 나오지 않았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면 호스텔 로비에서 하루 정도는 재워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할 무렵,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손님들 운이 참 좋네요! 제 친구가 아파트를 하나 운영하는데 마침 빈방이 있데요. 가격도 여기보다 저렴해요. 잠시만요 사진을 보내준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분명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를 위해 백방으로 알아본 호스텔 직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놈의 의심병이 도지고 있었다. 그리스 아르네야에서 할아버지와 만났을 때처럼…


“이것 봐요. 이게 방 사진이에요.”


호스텔 직원의 친구가 보내준 방의 사진은 무척 깔끔하고 넓은 아파트였다. 


“좋은데요? 그 방으로 할게요…”


찝찝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 방이 아니면 노숙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우선 좋은 방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거기다 픽업까지… 그리고 숙박비는 선불로 현금을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지금 이것저것 가릴처지는 아니지만,


나중에 픽업비를 요구하면 어쩌지? 숙소의 안전에 대한 검증은? 숙소비를 못 받았다고 나중에 또 요구하면 어쩌지? 하는 등의 걱정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결국 예약대행 사이트에 컴플레인을 걸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수기로 영수증을 받기로 결심하고 그를 찾아갔다.


"혹시 영수증을 끊어줄 수 있나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우리는 그런 양식이 없는데..."

"아시다시피 오버부킹 때문에 저희가 피해를 보았잖아요? 대행 사이트에 항의를 해보려고요."


솔직히 속이 뻔히 보이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 며칠 전에도 손님과 같은 사례로 저희 아파트에 숙박한 고객들이 있었어요. 그들도 사이트에 항의를 해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시도는 해보고 싶어서요. 부탁해요."

"그렇다면 수기로 증빙받고 싶은 내용을 적어오세요. 그럼 제가 사인을 해드릴게요. 도울 수 있다면 뭐든 도와야지요."

"감사해요. 그럼 제가 작성해서 내일이나 체크아웃할 때 부탁드릴게요."


생각과는 달리 그는 적극적으로 나를 돕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난 영수증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의 적극적인 친절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수줍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그의 아내 그리고 도와줄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물어오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더 이상 그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행복한 가족을 믿어보기로 했다.


브라쇼브 구시가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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