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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17. 2017

002-02. 이제 나 적응했어

잘 모르면 코베이는 베트남


하노이에는 지하철이 없다. 난 버스보단 역의 이름과 내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하철이나 트램이 좋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걷기 또는 택시였다. 그날도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택시를 타고 맛집과 관광지가 모여있는 번화가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비싸도 관광지 근처로 숙소를 구할걸 그랬어."


목적지로 향하는 택시에서 누라가 말했다.


"그러게 오래 머물 곳이면 몰라도 베트남은 비자 때문에 어차피 오래 있지도 못하는데"


내가 대답했다.


"응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랑 교통비 생각하면 조금 비싸도 번화가에 잡는 게 이득이었을 것 같아"

"다음부턴 잠시 머무는 곳은 그렇게 잡도록 하자 우리 방콕에 잡은 숙소는 좀 번화가랑 가깝던가?"

"아니 엄청 외각이야"


어느 정도 교통비는 각오해야 한다는 듯 와이프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에게 숙소가 관광지랑 가까운지 먼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관광지와의 거리가 먼 주거지역은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무비자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베트남은 우리에게 그리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린 베트남을 구경하려 매일 열심히 돌아다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다량의 교통비 발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베트남 물가가 져렴해 택시비가 그렇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린 베트남의 물가에 따라 돈을 미리 환전해 왔기 때문에 환전해 온 돈을 다 쓰면 ATM 출금이 불가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싶은 ATM... 택시비는 그 ATM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었다.


"다 왔어 너희가 가고 싶다고 한 곳이 저기야"


ATM기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 기사 아저씨가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얼마죠?"


감사의 인사를 하고 돈을 지불하려던 그때 난 내 귀를 의심했다.


"150,000동"


150,000 동이면 한화로는 7,000~8,000원 정도 하는 금액으로 한국에서 이만큼 택시를 타도 나오지 않을 금액이었다.


"아저씨 50,000동 아니에요?"

"아니야 150,000동이야"


기사님은 단호했다. 분명 미터기엔 500이란 숫자가 쓰여 있었지만 기사님은 단호하게 150,000동을 말했다. (베트남은 보통 가격 뒤에 영 두 개를 빼서 간략하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 뭐 이따위야, 모르니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더 이상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난 신경질적으로 150,000동을 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내린 후 누라와 2인분에 100,000동짜리 밥을 먹으며 방금 있었던 택시비를 생각했다. 어제 분명 이보다 먼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갔음에도 50,000동뿐이 나오지 않았던 터라 이 찜찜한 기분은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다녀왔어요."


숙소 로비를 지나가면서 데스크를 지키는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림 잘 다녀왔어? 근데 왜 표정이 안 좋아?"


단순히 더워서만은 아닌 내 우울한 얼굴을 보고는 그 직원이 물었다.


"우리 아침에 택시를 타고 나갔는데 150,000동이 나왔어요. 근데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왔는데 60,000동 나왔어요.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베트남 물가를 가늠할 수가 없네요. 이게 말로만 듣던 사기예요?"


말하다 보니 속에서부터 억울함이 올라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워워 진정해"


내 말을 듣던 직원이 날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어떤 택시 탄 거야?"

"네? 그냥 지나가는 택시 아무거나... 작은 게 싸다고 해서..."

"그러면 안돼~"


웃으면서 말을 시작한 직원의 말은 이러했다. 베트남은 택시 사기가 많아서 현지인도 택시를 골라서 탄다고 했다. 작을수록 저렴한 택시 기본요금이 적용되니 경차택시를 골라서 탄 건 잘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개 정도의 양심적이고 저렴한 택시회사가 있는데 가급적 그 회사택시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작은 초록색 택시를 이용해.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네가 그 택시를 탄 건 유감이지만..."

"고마워요.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응 고마워. 참 오늘 아침 안 먹고 나갔더라? 과일 챙겨놨으니까 이거 가지고 가서 먹고 편히 쉬어"

"와 감사해요. 안 그래도 목말랐는데 고마워요."


직원이 건네준 접시에는 과일이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많은 객실이 있음에도 우리 방 번호를 기억해주는 친절한 숙소 직원이 건네준 과일 한 접시와 친절한 설명 덕분에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찜찜한 기운이 스르륵 사라질 수 있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열심히 찾아 해맨 작은 초록 택시


이후 우린 베트남에서 저렴한 택시를 골라타는 법이 익숙해졌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무지막자히게 달려오는 거리를 건너는 것도 익숙해졌다. 잘 모르는 것을 배워나간다는 것 그리고 익숙해진다는 것, 이런 맛에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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