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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14. 2017

002-01. 여기 나랑 맞는 거 같아!

시작부터 우린 통했다.


베트남! 첫 느낌이 좋아!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과 맞는 도시는 공항에 착륙하면서부터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설레는 감정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나에겐 베트남이 그런 나라인 것 같다. 사실 베트남을 방문한 목적은 쌀국수 하나였다. 평소 쌀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베트남분들이 직접 하시는 가게를 찾아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베트남은 쌀국수보다 다른 매력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호안끼엠호수의 야경

우린 대만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다. 늦게 나온 수화물로 인해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지체되었고 덕분에 우린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가게 되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대중교통이 주는 불편한 긴장감이 없어서 인지 난 처음 보는 베트남의 밤거리를 바라보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베트남의 거리에는 프랑스의 흔적이 남은 건물들이 곳곳에 보였다. 파스텔톤의 허름한 건물들, 주황색 가로등 그리고 습하고 더운 날씨에 난 중남이를 떠올렸다. 평소 중남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있었던 나에게 베트남의 야경은 설렘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난 베트남에게 첫 만남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하노이 부촌인 서호에서 바라본 풍경




오 마이 베트남 요리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그랬는지 여행이 고단했는지 첫날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우린 일어나자마자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서 유명해졌다는 식당으로 '분짜'를 먹으러 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가장 인기 없는 식당 입구 자리에 안내받은 우리는 그분이 드셨다는 분짜 세트를 주문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분짜.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



난 메뉴가 나오자마자 기름진 고깃국물에 채소와 양념을 푹 적셔 고기와 함께 크게 한입 물었다.


'후륵 후루룩...!'


눈물이 나올 뻔했다. 감동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대만에서의 메뉴 실패를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에어컨이 안 나오는 더운 식당도 용서가 되는 그런 맛이었다. 그야말로 정말 맛있는 음식.



그 식사를 이후로 쌀국수란 쌀국수는 다 먹으며 돌아다닌 것 같다. 적셔먹는 쌀국수, 비벼먹는 쌀국수 그리고 국물 있는 쌀국수 등등 모두 다.


베트남 음식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만에서 하루에 한 번 이상씩 꼭 차를 마셨다면 여기선 커피를 마셨다. 베트남의 중남부 고원지대 기후는 토양 이점과 함께 커피 재배에 적합하여 커피 수출에 큰 기여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양질의 커피 원두가 나오는 베트남이다 보니 다양한 커피가 발달했다. 특히 연유를 넣은 커피와 코코넛을 활용한 커피가 유명한데 그 맛에 반해 한 번도 안 마신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신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다. 이런 커피가 원화로 한 잔에 2,000원 정도 하니 커피를 달고 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우리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아


"여기 엄청 비 싼 곳 인가 봐"


베트남 정통 음식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온 음식점에 들어서며 누라가 내게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너무 창피한데..."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내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리다 식당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배정받은 자리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보지 못한 좋아 보이는 식당 인테리어, 과도하게 친절한 직원들은 '우린 비싼 식당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저렴한 베트남 물가를 즐기고 있는 듯한 돈 많아 보이는 여행자들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단기여행이었으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예산을 빠듯하게 짜논 배낭여행자 신분이다. 오늘의 과소비가 내일의 행복을 망칠 수 있기에 우리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아직 여행 초기라 남은 돈이 많다고 안심해서 인지 '우리 그냥 돌아갈래요.' 하고 나가기가 창피해서 인지 우린 조심스럽게 직원이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엄청 비싸면 비상금 써야지 뭐"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가 누라에게 말하며 메뉴판을 건네 받았다.


"자 한 번 시켜볼까?"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맛있어 보이는 메뉴 옆엔 수많은 '0'들이 붙어있었다.


"이게 얼마지? 앞자리는 일단 2~5고 영들은 보자... 일 십 백 천 만 십만..."


순간 난 메뉴판 보던 것을 멈추고 누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와 우리 점심에 먹은 쌀국수가 둘이 십만 원이었는데 여긴 그거 몇 배야 몇 배! 우리 엄청 비싼곳에 왔나 봐"

"그러게 여긴 우리가 가던 곳이랑 차원이 다르네?"


메뉴판의 수많은 '0'들을 보며 누라가 말했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나?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고 해야 덜 창피할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부자인가? 비상금을 털어야 하나? 이건 뭔데 이렇게 비싸지? 하고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 때 누라가 내게 물었다.


"근데 이거 한화로 하면 얼마지?"

"글쎄 여기 100원이 우리 5원이니까..."


메뉴판에 적힌 음식들의 가격을 원화로 계산하던 난 순간 허탈함을 느끼며 누라에게 말했다.


"음 그러니까... 만 오천 원...? 가장 비싼 게 이만 오천 원...?"


잠시 머물렀지만 그동안 베트남의 화폐단위에 길들여진 우리였나 보다. 최초 여행자금을 배분하면서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국가에서 돈을 최대한 아껴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충당하자는 취지로 베트남 돈을 많이 환전해 오지 않은 게 문제였다. 원화로 따지면 둘이서 한 끼 사 먹으면 오천 원 커피를 사 먹으면 삼천 원 정도면 충분한 나라이기에 처음부터 큰돈을 환전해 오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적게 환전한 금액 안에서만 돈을 사용했고 그 결과 십만 동(한화로 약 오천 원)도 그렇게 큰 금액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베트남에선 큰 금액이었지만 지금 당장 식당을 박차고 나가니 마니하며 고민을 하게 만들 금액은 아니었다. 환화로 바꿔 생각한 후 한결 마음이 편해진 우리는 그렇게 베트남에서 행복한 사치를 부리는 밤을 가졌다.

식당앞에 좋은 자동차들이 많이 오고가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비싼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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