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7. 유럽의 인종차별

벨기에, 브뤼셀

by 개포동 술쟁이
한국이든 유럽이든 인종차별은 1%도 안 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한두 마리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소수의 부적응자들이 나라의 이미지를 망치는 것일 뿐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오늘의 일기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호스트의 사정으로 인해 숙소를 옮겨 남쪽 동네로 이사를 왔다. 북쪽에 위치했던 이전 동네는 유럽이 아니라 판교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동네는 유럽스럽다. 집도 더 깔끔하고 시설도 더 좋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았다. 저녁을 사러 가기 전 까지는...


여느 때와 같이 우린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근처 스낵 전문점으로 갔다. 기로스에 들어갈 고기를 결정한 후 주문을 하는데...


"치킨 기로스 하나랑 햄버거 하나 주세요."

"!@@!$!@$!%^^^^$@#$$ 사무라이 소스?"


알아들을 수 없는 뵹숑뵹숑한 소리. 불어였다. 벨기에에서 불어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통 외국인에겐 영어로 대화해 주었는데 여긴 아니었다. 그렇게 젊은 아랍계 직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 하나 안 쓰고 불어로만 우리를 대했다. 아무리 그래도 영어 한 두 마디는 할 줄 알 텐데. 심지어 메뉴 이름도 다 영어인데. 그러면서도 내가 영어로 물어보면 대답은 또 한다. 뭐지? 아무래도 그는 나에게 인종차별 비슷한 걸 하고 싶었나 보다. 가소로운 것, 루마니아에서부터 단련된 우리다 이것아. 투명인간 취급 정도는 해줘야 인종차별이지. 그래도 장사는 하고 싶었나 보구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중간중간 들리는 영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에 의존해 주문을 이어나갔다. 계속되는 무시에도 별 신경 안 쓰고 꿋꿋이 주문을 하는 날 보며 적잖게 당황했나 보다. 이번엔 금액을 불어로 말한다. 휴... 메뉴판에 금액이 나온 음식만 시킬걸... 후회되었다. 난 서둘러 옆에 서있는 백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실례합니다. 제가 불어를 몰라서 그런데 뭐라는 거예요?"

"13유로 나왔다고 하네요. 콜라는 셀프로 가지고 가는 거래요."

"고마워요."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묻지도 않은 것 까지 다 알려주었다. 고마워라.


확실히 서쪽으로 이동할수록 인종차별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줄어들고 있다. 아주 가끔 이렇게 인종차별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웃긴 건 그들 대부분이 타지에서 온 이주민이라는 것이다. 인종차별로 유명한 파리에서 인종차별을 일삼는 콧대 높은 사람들은 죄다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다. 자부심인지 자존감의 부족인지 참 쓸데없어 보인다. 파리보다 여기가 더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편으론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도 많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끔 보면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인종차별이나 사기에는 민감하면서도 우리가 일삼는 행위엔 무덤덤한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이나 언어들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러한 표현을 들었을 때 어떠한 심정이 들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 관광객에게 삼겹살 1인분을 2~3만 원에 판매한다던지, 양재에서 이태원까지 택시비를 3만 원이나 받는다던지 하는 행위는 빨리 멈춰야 한다. 정말 창피하다.


이전 숙소에 머물 때 매일 저녁을 사던 스낵 집 사장님이 그립다. 기로스 2개를 만드는데 10분이나 걸리지만 참 맛있었는데... 그렇게 반가운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줬는데... 인사를 못하고 온 게 갑자기 아쉬운 밤이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DSC00837_day.jpg 북역 버스터미널 근처 숙소 도로변의 모습
DSC00843_day.jpg 북역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숙소모습
DSC00846_day.jpg 남쪽 숙소 앞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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