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여행을 시작한 지 딱 100일이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사실 100일 정도 지나면 내게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다던지, 여행의 고수가 되어 있다던지 하는.
하지만 오늘의 나는 심심할 정도로 그때와 같다.
난 변함이 없고 여행은 여전히 서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것 정도겠다.
소피아 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없었다. 다음 도시로 향하는 교통편이나 숙소가 확정되어 있지 않으면 초초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요즘은 당장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여유롭다.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더라.
행동에도 여유가 생겼다. 여행하는 모습이 한국에서의 삶과 비슷해졌다. 외출의 목적이 생기면 딱 그 목적만 이루고 돌아온다. 예전처럼 도시의 모든 면을 보려 애쓰지 않는다. 보고 싶은 면만 질릴 때까지 본다. 이렇다 보니 셔터를 누르는 횟수도 줄었다. 그렇다고 게을러졌거나 여행에 무덤덤해진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추억은
사진보다 내 머릿속에 더 선명히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옷차림도 많이 단출해졌다. 가방도 잘 들지 않는다. 집 앞 마트는 츄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간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 가끔 길을 물어오는 관광객들도 생겼다. 나도 구글맵 없으면 못다니는데...
얼마 전 일기에 적었던 바와 같이 여행 기간에 대한 압박감도 많이 사라졌다. 300일 이상, 세상 구석구석을 누벼야 한다는 의미 없는 사명감은 이제 없다.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들어가려 한다.
100일, 다행히도 우린 이렇게 소소한 변화를 겪으며 아무 일 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
어제와 같이 건강하게, 최선을 다해 놀고 있다.
오늘 우리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마트에서 파는 3천 원짜리 와인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거창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100일이 지나가고 있다.